[김순정목사 설교] (어린이주일) 자녀들의 피난처이신 주님

잠 14:26-27

김순정 | 기사입력 2021/05/01 [09:17]

[김순정목사 설교] (어린이주일) 자녀들의 피난처이신 주님

잠 14:26-27

김순정 | 입력 : 2021/05/01 [09:17]

   

 

▲ 김순정 목사     ©리폼드뉴스

이번 주일은 어린이주일로 지킵니다. 어린이주일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자녀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잠언 14장은 악인과 의인의 특성을 비교합니다. 특별히 사회적인 관점에서 이 둘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26-27절은 우리 자녀에게 가장 값진 것이 무엇인가를 깨우쳐줍니다.

 

1. 견고한 의뢰(26a)

 

부모는 누구보다 자신의 자녀를 사랑합니다. 자녀를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자녀에게 부모된 우리가 무엇을 주어야 할까요? 많은 재물이나 재산을 물려주면 되는 것입니까? 물론 이 세상이 끝이라면 많은 재물이나 재산은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고 행복을 누리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세상이 끝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 사람은 모두 죽습니다. 이 죽음은 죄의 대가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죽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습니다. 내세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에, 그리스도 밖에 있는 악인은 영원한 형벌의 지옥에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스러운 자녀에게 유산으로 남겨 주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잠언은 2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26a) "견고한 의뢰"(미브타흐 오즈)는 문자적으로 강력한 피난처, 안전한 피난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강력한 피난처입니다. 안전한 피난처입니다.

 

이것을 자녀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피난처는 누구에게 있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있다고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경외(이르아)두려움, 경외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하면서 친근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도를 넘어서서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무시하고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은 하나님을 너무 무서워하여 기도도 못하고, 하나님께 나가지도 못합니다. 믿지도 못합니다. 경외라는 개념은 이 둘을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믿고 친근하게 기도하고 의지하는 동시에 두려워하고 경배해야 합니다.

 

2. 자녀들의 피난처(26b)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다고 합니다. 26b를 봅시다.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피난처(마하쎄)는피난처, 대피소라는 의미입니다. 이 피난처는 재난의 위험에서 우리를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곳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성도의 피난처(Refuge)를 장소가 아닌 하나님이라고 가르쳐줍니다. 하나님만이 이 세상에서 진정하고 유일한 피난처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즉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동시에 두려워하는 자에게 피난처가 있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모든 사람은 피난처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그 피난처를 상정해 놓고 살아갑니다. 넓은 집, 담배, , 마약, 자동차, 재물, 권력, 명예 등등을 피난처로 상정해 놓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영원한 피난처가 아닙니다. 일시적인 피난처가 될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그 확실한 피난처가 누구신가를 확실하게 밝혀줍니다.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삼하 22:3)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46:1)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이다.”(17:17)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3:16) 이 말씀은 한결같이 우리의 진정한 피난처를 계시합니다. 그 피난처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오늘 우리의 피난처는 누구십니까?

 

3. 생명의 샘(27)

 

잠언은 계속해서 27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앞에서 언급한 것을 다시금 언급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여호와를 믿고 의지하며 두려워하는 신앙은 생명의 샘이라는 것입니다. (Fountain)은 지하수가 저절로 땅 표면으로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특히 가나안 땅에서는 물이 적기 때문에 이런 샘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가나안은 1년 중 반이나 비가 오지 않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샘물이 생명을 좌우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샘물이 생명과 직결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생명의 샘물이 소중한 재산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의 영혼이 사는 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떠나서는 절대로 영생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이 영원한 천국에서 사는 것이 생명의 샘입니다. 생명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잠언은 우리 자녀에게 그 길을 알려줍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바로 생명의 샘이라고 분명히 밝혀줍니다. 바로 그 생명의 샘이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53:6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생명의 샘입니다. 우리를 사망에서 살리는 길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희생제물을 보내주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는 사망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함은 신약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계시록 21:6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수 샘물을 주시는 분입니다.

 

어린이주일을 맞아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바로 이 진리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이 진리만이 아이들을 영원한 피난처로 인도해줍니다. 자녀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생명의 길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먼저 믿은 우리 어른들의 사명입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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