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합동, 정통보수신학과 WEA 교류 여부 단상

소재열 | 기사입력 2021/06/14 [15:46]

예장합동, 정통보수신학과 WEA 교류 여부 단상

소재열 | 입력 : 2021/06/14 [15:46]

 


(리폼드뉴스박형룡 박사는 근본주의에 대해 근본주의는 별다른 것이 아니라 정통주의요, 정통파 기독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적, 정통적 신학을 그대로 믿고 지키는 것, 즉 정통신앙과 동일한 것이니 마치 이것은 곧 기독교 자체라고 단언하는 것이 가장 정당한 정의일 것이다. 근본주의는 기독교 자체이다라고 말했다(신학지남, 25권제1, 1960).

 

박형룡 박사의 이같은 견해는 훗날 칼빈주의는 근본주의와 같은 맥락이냐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동일계열의 신학적 입장을 갖고 있는 교단 내부에서 조차 박형룡 박사는 세대주의적인 근본주의신학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본 교단은 근본진리를 추구하지만 근본주의라고 말 할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들이 있다.

 

박형룡 박사의 이같은 견해는 1959년 통합측과 분열된 이듬해인 1960년에 발표한 글이다. 이후 박 박사는 근본주의, 칼빈주의, 혹은 개혁주의, 청교도적 개혁주의 등의 말을 병행하여 그의 여러 글에서 사용했다.

 

특히 그는 장로교회의 신학은 정확히 말해서 유럽의 칼빈주의와 영미(英美)의 청교도 사상이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구현된 신학이며, 이 신학은 마침내 청교도적인 영미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에 전래되어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인 전통이 되었다고 했다(신학지남, 43권 제3, 1976)

 

박 박사는 이 글에서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을 청교도 개혁주의라고 부르며, 그 특징은 성경의 신성한 권위를 믿는 믿음’, ‘하나님 주권에의 확신’, ‘안식일의 성수와 경건생활에 치중’, ‘성실한 실천’, ‘전년기전 재림론이라고 했다.

 

이 시점에서 박 박사는 정통신학에 대해 정통신학은 신구약 성경을 천계(天啓)와 영감(靈感)으로 말미암아 온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고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법칙으로 인정하는 초자연적 성경관을 가진다라고 했다(현대신학비평 상권, 1977).

 

한국장로교회는 초기 선교사들의 신학적 입장에 의해 세워졌으며, 보수적인 교회로 성장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선교 후 50년 희년의 해를 중심으로 한국장로교회는 자유주의 혹은 자유주의신학이 태동했다. 그 중심 인물이 김재준 박사였고, 일본, 카나다에서 교육받은 인사들이 이에 호응했다. 이들에 의해 보수적 한국장로교회 안에 성경무오설이 공격과 위협을 받았다.

 

1940년에 이르러 보수적인 선교사들은 일제의 강제 출국 명령으로 대부분 한국을 떠났다. 선교사들의 영향 아래 교육받은 한국의 보수적 교회 지도자들은 일제에 의해 투옥되었거나 망명의 길을 떠났다. 한국의 장로교회 보수주의 세력의 지배권은 완전히 무너졌거나 무너지고 있었다. 교회의 주도권은 자유주의자들의 세력에게로 넘어갔다. 결국 박형룡 박사 역시 한국을 떠나 만주 봉천신학교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수주의’, ‘보수신학’, ‘정통신학’, ‘정통주의라는 슬로건으로 보수세력들이 결집되기 시작했다. 보수신학이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방어하고 적극적으로 공격하면서 교회 지킴이 역할을 한 신학이다.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을 받은 한국교회의 확실한 보수신학의 선구자로서 박형룡 박사가 등장한다. 서철원 박사에 의하면 박형룡 박사의 첫 번째 신학적 공헌으로 성경무오의 확립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성경의 무오를 강하게 주장하고 변호하므로 한국교회의 신학이 성경에 근거한 보수신학이 되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이어 서철원 박사는 자유주의 신학이 성경비평으로 시작한 것에 비추어 보면 성경적인 보수신학 혹은 정통신학을 지키는 길은 성경무오를 확립하는 길이었다. 처음 성경비평을 시작할 때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으로 시작하였다고 했다(신학지남, 통권 제72권 제2, 2005).

 

박형룡 박사는 이 모든 문서들에서 한국장로교회의 전통적 정통신학을 보수 전달하려는 일편단심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은 전국 교계가 알아주시면 합니다”(전집 서문)라고 하여 자신은 전통적 정통신학을 위해 노력했음을 강조했다.

 

서철원 박사는 보수신학에 대해 보수신학은 역사적 기독교를 뜻한다라고 말하면서 더욱 정확하게 정통 개혁신학을 뜻한다라고 했다. 이어서 그는 전통적인 신학을 고수하는 신학이 정통신학이고 이 신학의 보수를 주장하는 신학이 보수신학이다라고 말했다(신학지남, 통권 제63호 제1, 1996).

 

서 박사는 특히 보수신학을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이라는 점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중요한 보수신학의 요건으로 보았다. 이를 믿고 주장하면 보수신학이라고 했다.

 

한국장로교회는 1930년대 치열했던 자유주의 신학의 성경무오성 교리에 대한 도전에 반격하므로 출발한 보수신학’, ‘정통보수신학이라는 용어가 한국장로교회(합동)의 지배정신이 되기도 했다.

 

본 교단(예장합동)의 일부 인사들이 마치 보수신학, 정통보수신학만 부르짖으면 모든 문제가 면제될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할말이 없으면 무조건 정통보수신학만 부르짖으면 되는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현대교회의 중요한 대 사회적인 답변과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 예컨대 동성연애, 차별금지법 등에 대해 침묵하고 이를 위해 교단(예장합동)를 떠나 다른 교단과 기독교적 단체들과의 연합에 대해 정통보수신학은 우리들과 신학이 다른 이들과 연대할 수 없다며 반대 목소리만 높인다.

 

지금까지 정통보수신학이라는 용어만으로 한국장로교회와 본 교단을 지켜온 것은 아니다. 이제 정통보수학은 근본교리인 성경의 무오성, 동정녀 탄생, 삼위일체 등의 근본 진리들을 지키기 위해 외부와의 담을 쌓을 것이 아니라 불변의 진리인 이를 기초로 하여 전 포괄적인 영역에서 우리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본 교단은 1970년대 정통보수신학만을 부르짖는 나머지 초교파적인 신학교인 아시아 연합신학대학원에 대해 본 교단 총회, 또는 목사와 장로들은 관여하지 않기로 결의했다(59회 총회, 1974). 이를 위반할 때에는 총회 결의 위반죄가 성립된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 신학교 교수가 본 교단 신학적 정체성 위원회에 연구교수로 있다. 그리고 그 신학교 교수가 본 교단에 소속되어 지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 이들은 다 총회 결의 위반으로 치리해야 하는가?

 

지금 현재 WEA에 대한 문제가 제106회 총회에 첨예한 대립과 갈등으로 본 교단 총회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제104회 총회가 다음과 같이 지혜롭게 잘 결정했다.

 

“WEA가 우리 총회가 지켜오고 추구하는 신학적 입장과 크게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어 교류 단절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같은 결의는 교류하자는 것도 아니고 교류를 금지하자는 것도 아니다. 105회 총회에서 교류금지를 청원한 경중노회는 어느 당회가 청원하여 노회에서 결의하여 총회에 헌의했는지, 그리고 정확한 헌의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WEA에 대한 제105회 총회가 신학연구를 신학부에 위임했으니 총회 신학부가 제106회 총회에 어떻게 보고할 것인지를 지켜보자. 이를 지켜보면서 교류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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