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목사 설교]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

갈 2:11-21

김순정 | 기사입력 2021/10/16 [11:37]

[김순정목사 설교]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

갈 2:11-21

김순정 | 입력 : 2021/10/16 [11:37]

  

  © 리폼드뉴스


바울은 베드로와 요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자신의 사도권을 인정했음을 언급하고 나서 베드로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의 우월성을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의 사도권이 특별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울의 강조점은 바로 베드로나 바울이나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사도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대상이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 율법주의 이단을 주의하라고 당부합니다.

 

1. 게바를 책망한 바울(11-14)

 

게바 즉 베드로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 책망을 받을 일이 있어 바울이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습니다(11).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 사이에서는 말도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것도 교회가 기둥처럼 여기던 사도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를 책망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의 우월성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사도권과 베드로의 사도권의 동등성을 말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 책망의 사건은 바로 이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오자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갔습니다(12). 그래서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했습니다.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습니다(13). 당시 안디옥(안티오케이아)은 이방인 교회의 중심지였습니다. 또 이방 선교의 전초지였습니다. 그곳에 야고보가 감독으로 있던 예루살렘 교회에서 어떤 이들이 개인적으로 안디옥을 방문한 것입니다. 이들은 유대인 출신의 신자들이었습니다.

 

바울과 함께 사명을 받은 바나바도 베드로와 같이 이방인들과 먹다가 물러갔습니다. 이방인들과의 자리를 떠나 따로 먹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교의 전통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 전통을 다 허물어 버리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이방인에게도 주어집니다. 혈통, 인종, 언어, 성별을 떠나 누구나 그리스도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다같이 14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이 광경을 보고 바울은 베드로를 책망합니다. 베드로가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차별이 없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차별을 한 것입니다.

 

2. 이신칭의(15-18)

 

바울과 베드로는 본래 유대인입니다. 이방인이 아닙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인 바울도 베드로도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율법의 행위(에르곤 노모우)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디아 피스테오스 예수 크리스투)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절대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 즉 할례를 받는다든지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죄인지 깨닫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는 절대 의롭게 되지 못하고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래서 율법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 안내해줍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율법이 알려줍니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신 것인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또 만약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스스로 범법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17-18).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이 그리스도를 떠나서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가 율법주의로 돌아가는 것은 바로 범법입니다.

 

3.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19-21)

 

바울은 19절에서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고 합니다. 원문은 왜냐하면’(가르)이란 단어로 시작합니다. 앞의 말씀에 대한 이유입니다. 바울은 범법자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지 못합니다. 그래서 죄인으로 판명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는 율법에 복종할 이유가 없습니다(6:14).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바울이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바울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이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바울을 사랑하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20). 자세히 보면 바울은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을 강조합니다.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능해진 것입니다. 바울이 스스로 의롭게 살고 율법을 다 지켜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을 통해 의롭게 되고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만약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헛된 것입니다(21). 율법주의 이단들의 주장대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 죄를 해결하는 것, 하나님께 구원받는 것이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이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이유는 우리의 그 어떤 노력으로도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를 해결할 수 없고, 하나님께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 대신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었습니다(20:28).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사랑을 보여주신 증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에 구원자로 독생자를 보내주신 것입니다(3:16). 로마서 3:20-22절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고 합니다.

 

결론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화목제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피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입니다(롬 3:24-25).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로 된 것이 아닙니다. 이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믿고 한 주간도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