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기념논문] 이상웅 교수, “총신에서의 헤르만 바빙크 수용과 연구사”

총신대 신학대학원의 이상웅 교수가 2021.10.26에 총신대학교에서 발표한 종교개혁기념 학술세미나 논문으로 요약하여 소개해 본다.

김순정 | 기사입력 2021/11/06 [13:46]

[종교개혁기념논문] 이상웅 교수, “총신에서의 헤르만 바빙크 수용과 연구사”

총신대 신학대학원의 이상웅 교수가 2021.10.26에 총신대학교에서 발표한 종교개혁기념 학술세미나 논문으로 요약하여 소개해 본다.

김순정 | 입력 : 2021/11/06 [13:46]

 

▲ 총신대학교 개혁신학연구센터(RTRC)가 주관하는 종교개혁기념 학술세미나  © 리폼드뉴스


이 논문은 총신대 신학대학원의 이상웅 교수가 2021.10.26에 총신대학교에서 발표한 종교개혁기념 학술세미나 논문으로 요약하여 소개해 본다.

 

1. 들어가는 말

 

선교사들이 주도했던 평양 장로회신학교 교수들은 신칼빈주의를 거의 알지 못했다. 때문에 신칼빈주의에 관련된 글을 남긴 신학자들이 없다. 그나마 죽산이 자신의 박사논문과 1935년에 출간한 근대신학난제선평에서 몇 번 언급하는 정도이다. 죽산은 1940년에 기고한 한 논문에서 칼빈주의와 신칼빈주의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그가 말하는 신칼빈주의는 카이퍼와 바빙크의 신칼빈주의와 아무련 관련이 없다. 그러나 해방 이후 1948년에 서울에 개교한 장신(총신)에서는 드디어 바빙크의 대한 소개가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시간을 지나오면서 바빙크에 대한 직접적인 소개도 가능하게 되었다.

 

올해는 바빙크 소천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로서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학회와 심포지움이 개최되고 있는데, 본 개혁신학연구처 주관 종교개혁 학술제에서 카이퍼, 워필드와 더불어 바빙크에 대해 숙고하게 된 것은 시의적절한 일이라고 사료된다.

 

2. 죽산 박형룡(1897-1978)의 헤르만 바빙크 수용

 

2.1. 죽산의 역사적 배경

 

죽산은 익히 알려진대로 한국에 온 장로교 선교사들의 영향하에 중등, 고등 교육을 받았고, 중국 금릉대학을 거쳐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와 남침례교 신학교 등에서 신학과 변증학을 공부했다. 귀국한 후 정착 과정을 거쳐 1931년 봄학기에 평양 장로회신학교 변증학 전임 교수로 취임하여 1938년까지 재직한다. 1942년 만주 봉천신학원 교수로 초빙을 받아 부임하게 되었다. 죽산의 생애에 있어서 1942년은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데, 죽산이 변증학자에서 조직신학자로 전환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봉천에서 조직신학 전 과목을 가르치게 되면서 죽산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신학 자료들을 참고로 하되 최신간이었던 벌코프의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을 근간으로 하여 강의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1947년 고려신학교의 초대로 귀국하게 되고, 1948년에 남산에 장로회 신학교를 복교하고 난 후에도 죽산은 교의신학을 계속해서 강의하면서 강의안 증보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1964년에 정식적으로 교의신학전집 간행이 시작되어 1973년에 총7권으로 완간되기에 이른다.

 

2.2. 죽산의 바빙크 신학 수용

 

앞서 살펴본 대로 죽산 박형룡이 바빙크의 저술을 처음 접한 것은 박사논문을 쓰던 시기였지만,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의 내용을 접하기 시작한 것은 벌코프의 조직신학을 강의안의 근간으로 삼으면서부터 였다. 그리고 1950년대에 이르면 바빙크의 신론하나님의 큰 일영역본이 출간되고, 이때부터 죽산은 영역된 바빙크의 저술들을 강의안 증보 작업에 많이 활용하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3. 정암 박윤선(1905-1988)의 바빙크 수용

 

3.1. 정암의 역사적 배경

 

정암은 죽산이 평양 장로회신학교 전임교수로 부임하던 1931년에 입학하여 신학수업을 하고 1934년에 졸업을 했다. 그는 도미하여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존 G. 메이첸의 지도하에 신약신학 공부에 집중한다. 귀국한 후에 평양에서 활동하다가, 2차로 도미하여 다시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공부할 때에는(1938.9-1939.11), 코닐리어스 반틸의 변증학 강의를 들으면서 현대 신학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뿐 아니라 반틸이 중시하던 바빙크 신학과 화란 개혁주의 전통을 비로소 관심 가지게 된다.

 

3.2 정암의 바빙크 수용

 

정암 박윤선은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을 평생동안 읽고 사랑했다. 박윤선 박사는 성경 다음으로 바빙크의 개혁교의학화란어 원본을 가장 사랑하는 책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질 정도이다정암은 노년에 이르러서도 아침에 일어나면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 나서는 바로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을 읽곤 하였다고 아들 박성은 박사는 회상해 주기도 한다. 우리는 정암의 주저인 성경 주석(20, 1949-1979) 속에서 바빙크 신학의 직접 인용이나 간접 인용을 분석할 수도 있는데, 정암의 제자인 차영배 교수에 의하면 정암은 바빙크를 통해 계시의존 사색을 강조하게 되었다고 한다.

 

4. 심산 차영배(1929-2018)의 바빙크 수용

 

4.1. 심산의 교육 배경과 공적 사역

 

심산은 칼빈대학교(고신대 전신)와 고려신학교에서 신학 수업을 받는 중에, 정암 박윤선의 많은 영향을 받았다(1953-1961). 그후 계명대학교 철학과를 편입하여 졸업한 후에, 19652월 브루더벡 소재 깜쁜신학교의 최초 동양인 유학생으로 가서 신학 수업을 했다. 그가 국내에 돌아와서 활동한 초기(1970년대)는 늘 화란을 내왕하면서 우트레흐트 대학에서 헤르만 바빙크 신학 연구에 집중했다고 한다. 귀국 후 고신의 강사로 있다가 1971년부터 한국외대 화란어과 교수가 되어 가르쳤고, 1976년 봄학기부터 총신 조직신학 교수로 부임하여 1995년에 은퇴하기까지 교수로 재직하게 된다.

 

4.2. 심산 차영배의 바빙크 연구

 

앞서 살펴 보았듯이 심산이 바빙크 신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바빙크 전문가가 된 시초에는 정암 박윤선의 영향이 지대했다는 점은 명확한 사실일 것이다. 그가 유학한 브루더벡 깜쁜신학교 역시 바빙크 신학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었고, 일설에 의하면 그곳에서 유학하는 동안 심산은 교의학을 공부하면서 개혁교의학을 화란어로 읽기 시작하여 유학 기간 동안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전집을 여러 번 숙독했다고 한다. 1976년 총신에 부임한 이후 심산은 강의 시간에 바빙크 신학을 학생들에게 열렬하게 소개했었다.

 

5. 심산 이후 총신에서의 바빙크 수용과 연구

 

5.1. 최홍석 교수와 서철원 교수

 

(1) 최홍석 교수

 

최홍석 교수는 깜쁜신학교에서 독토란두스 과정을 마친 후인 1984년 가을부터 총신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여 2015년 가을 학기까지 31년간을 교수로 재직했다. 스승이자 장인인 심산 차영배의 영향으로 최 교수는 총신 재학 시절부터 헤르만 바빙크 신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유학 기간 동안에도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전집을 화란어로 읽고 이해하는 일에 힘을 썼다. 귀국 후 강의와 논저들을 집필함에 있어서 다른 개혁신학자들과 더불어 헤르만 바빙크를 많이 의존하였다.

 

(2) 서철원 교수

 

서철원 교수는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신학부에서 교의학을 전공하고(1976-1982) 귀국하여 처음에는 개혁신학교(1982-1991)에서 가르쳤고, 총신에는 1991년에 부임하여 2007년까지 재직했다. 탁월한 언어 실력으로 고전들뿐 아니라 화란 신학 원전들을 읽고서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 중보직이라는 박사 논문을 작성하여 성공적으로 방어한 바가 있는데, 이 논문 속에서 바빙크를 회복 라인의 신학자 중에 포함시켜 분석하고 있다. 귀국 후 다양한 신학 저술들 속에서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원전을 활용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때로 카이퍼뿐 아니라 바빙크에 대한 비판점들도 분명하게 제시하기도 했다.

 

5.2. 현직 교수들

 

(1) 강웅산 교수

 

강웅산 교수는 그의 주저인 구원론에서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영역본과 지속적으로 신학적 대화를 하고 있으며, 바빙크 관련 소논문으로 카이퍼의 중생교리에 대한 바빙크의 반론을 공표했다.

 

(2) 문병호 교수

 

문병호 교수 역시 바빙크에 대한 관심을 주저인 기독론에서 지속적으로 노정하고 있으며, 소논문 두 편에서 바빙크를 논구하였다. 먼저 2008년에 공표된 “Expiatio, Propitiatio, Reconciliatio(속죄, 용서, 화목): 바빙크의 그리스도의 무름 이해에서 문 교수는 바빙크의 속죄론이 칼빈의 입장을 계승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최근 카이퍼와 바빙크 소천 100주년을 기념하는 시기에 공표된 신학의 원리(principia theologiae): 헤르만 바빙크와 아브라함 카이퍼의 계시 이해라는 소논문을 통해서 문 교수는 카이퍼와 바빙크의 신학의 삼원리를 비교하여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크다는 점을 잘 밝혀주고 있다.

 

(3) 이상웅 교수

 

2012년 가을 학기에 신대원 조직신학 교수로 부임하여 가르치고 있는 논자도 일찍이 카이퍼와 바빙크 신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왔으며, 부임 후에는 바빙크 관련 강의들을 개설하거나 방중 스터디를 인도하기도 했다. 그간에 바빙크와 관련하여서는 총 네 편의 소논문을 발표한 바가 있다.

 

(4) 박태현 교수

 

2013년 봄 학기에 설교학 교수로 부임한 박태현 교수는 2011년에 완역 출간한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전집 번역자로 국내에서의 바빙크 연구 활성화에 크게 기여를 했다. 박 교수는 화란 아뻘도오른신학대학에서 청교도 설교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의 개신교자료 센터 연구원으로 소속하여 5년 반 동안 바빙크의 주저 번역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5) 박재은 교수

 

2021년도 2학기에 부임하여 기독교 윤리를 전담하여 가르치게 된 박재은 교수도 바빙크 연구에 기여를 해왔고, 앞으로도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주목된다. 우선 박 교수는 미국 캘빈신학교에서 존 볼트의 지도하에 박사논문을 쓰면서 바빙크에 대해서도 한 장을 할애했다. 박 교수는 바빙크의 경우 능동적 칭의와 수동적 칭의가 구별되나 분리될 수가 없으며, 마찬가지로 확정적 성화는 점진적 성화와 구별되지만 분리될 수 없다는 입장을 가졌음을 적시해 주었다. 그리고 바빙크 관련 소논문으로는 “‘창조계로의 참여모티브에 근거한 헤르만 바빙크의 전쟁관제임스 에글린턴의 Bavinck: A Critical Biography에 대한 비평적 고찰등이 있다.

 

(6) 신현우 교수, 김규보 교수, 류길선 교수

 

바빙크 관련 소논문을 발표한 다른 분과 교수들도 있다. 신약학자 신현우 교수는 헤르만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에 담긴 공관복음서 주해라는 소논문에서 그의 주해는 방법과 내용에서 Calvin의 주해를 계승하는 개혁신학적 주해이면서도 현대 주석가들의 연구를 통해 점점 그 탁월성이 드러나는 통찰력 있는 주해라는 점을 잘 밝혀주고 있다.

 

상담학자 김규보 교수는 헤르만 바빙크(H. Bavinck)의 언약 이해와 가정사역: 성경적 가족생활교육을 위한 언약의 실천신학적 함의를 통해 바빙크의 언약 이해를 중심으로 가족생활교육의 실천신학적 함의를 논구하고 있다.

 

신학과의 교회사 교수인 류길선 교수는 성경의 신적 권위에 대한 개혁주의적 해석: 헤르만 바빙크와 벤자민 워필드의 관점 비교라는 소논문을 통해 바빙크와 워필드의 계시론과 성경의 신적 권위에 대한 관점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논구하였다.

 

6. 나가는 말

 

총신은 어느 때보다 바빙크 연구의 붐이 왕성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과 바빙크 원전을 읽고 연구하거나 번역 소개하는 학자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점 등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들의 지도하에 앞으로 더 많은 바빙크 연구자들이 양성될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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