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목사 설교] 자유를 주신 그리스도

갈 5:1-12

김순정 | 기사입력 2021/12/03 [21:30]

[김순정목사 설교] 자유를 주신 그리스도

갈 5:1-12

김순정 | 입력 : 2021/12/0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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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두 아내와 두 자녀를 비유로 율법주의와 은혜를 설명했습니다(4:21-31). 하갈과 이스마엘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상징합니다. 사라와 이삭은 은혜 아래 있는 자들을 상징합니다. 아브라함의 유업, 하나님의 약속을 상속받는 자는 은혜 아래 있는 자들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1. 자유를 주신 그리스도(1-3)

 

다같이 1절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대속의 죽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죽음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었고, 죽음의 형벌,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율법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갈라디아교인들에게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고 합니다(2).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대속의 죽음을 당하시므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시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도가 된 자들이 다시 할례를 받고 율법 아래로 들어간다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되게 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로 들어가는 자는 율법 전체를 다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절대로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습니다. 로마서 3:20절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합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그 누구도 스스로 의롭게 되지 못합니다. 율법을 다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한 구원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이단은 이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3). 여기 할례를 받는 각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다가 갈라디아이단의 속임수에 넘어가 다시 할례를 받은 자를 말합니다. 이런 자는 율법 전체를 행해야 합니다. 의무는 빚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율법 아래로 들어가려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아 죽인 유대교의 사상으로 돌아가려는 것입니다. 율법주의는 매우 고상해 보이고 인간의 공을 칭찬하고 뽐내게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이 아닙니다.

 

2.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4-10)

 

바울은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자에게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합니다(4). 당시 갈라디아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준수가 첨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믿음+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구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 즉 인간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구원에 이를 수 있는데 굳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죽으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 성도는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립니다(5).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믿음 뿐입니다(6).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프뉴마티 에크 피스튜오스)성령으로 믿음을 좇아라는 의미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성령이 주시는 것이고 그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도 성령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즉 구원은 성령의 역사로 믿음을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은 전적으로 배제됩니다. 갈라디아교인들은 믿음 안에서 달음질을 잘 했습니다. 그런데 이단자들이 나타나 그들의 달음질을 방해한 것입니다.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7). 그들의 사상은 갈라디아교인들을 부르신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 아닙니다(8).

 

마치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과 같습니다(9). 바울은 갈라디아교인들이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않을 줄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을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10). 물론 바울은 갈라디아교인들이 이단사상을 잘 방어하고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 그리스도의 믿음에서 이탈될 것이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처럼 이단 사상은 온 교회를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하고 경계할 것을 당부하는 것입니다.

 

3. 스스로 베어 버리라(11-12)

 

바울이 지금까지 할례를 전했다면 박해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유대교의 가르침대로 율법을 통한 구원을 가르치고 전파했다면 유대인들에게 환영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유대교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가르치는 구원론과 다른 것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는 행위구원론을 주장했고 바울은 은혜구원론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바울이 지금까지 고난을 당하고 박해를 받은 것입니다(11).

 

만약 사도 바울이 유대교가 전한대로 전했다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걸림돌(스칸달론)은 '올가미, 덫'이라는 의미입니다. 율법과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둘을 합쳐 구원에 이르거나 둘 중 하나만 해도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방식은 오직 하나입니다. 믿음입니다. 둘 중 하나는 가짜이고 하나는 진짜입니다. 율법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짜입니다. 반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에 이른다면 율법을 통한 구원은 가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12). 이것은 교회의 권징입니다. 이단자들을 교회에서 추방하라는 것입니다. 출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단자들은 교회에 있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출교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의 순수성이 유지됩니다. 이단자들의 사상이 교회를 오염시키고 복음을 오염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단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오염시키고 훼손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저주를 받게 됩니다(1:8-9).

 

바울은 이단자에 대해 이렇게 경고합니다. 디도서 3:10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이단에 속한 자는 한두 번 훈계를 한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이단 사상을 굽히지 않을 경우 멀리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이런 자를 추방해야 합니다. 이를 출교라 합니다. 출교는 교회가 권징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벌입니다. 그러나 그 출교의 목적은 사람을 버리는데 있지 않고 살리는데 있습니다. 출교를 통해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도록 기회를 주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결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악의 사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율법의 지배 하에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고 거룩하게 살기 위해 애를 써야 합니다그리스도의 복음을 오염시키고 훼손하는 악한 자들의 유혹과 꾀임에 넘어가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바른 복음의 진리 안에 살아가야 합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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