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 개교 120주년 기념 감사예배

총신대학교 전신인 평양장로회신학교가 1901년 5월 15일에 시작

소재열 | 기사입력 2021/05/14 [21:13]

총신대 개교 120주년 기념 감사예배

총신대학교 전신인 평양장로회신학교가 1901년 5월 15일에 시작

소재열 | 입력 : 2021/05/14 [21:13]

 총신대학교 개교 120주년 기념행사 © 리폼드뉴스


(리폼드뉴스)  총신대학교(총장 이재서 교수)가 개교 120주년을 맞이했다. 총신대학교 전신인 평양장로회신학교 설립이후 12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514일 오후 2시에 사당동캠퍼스에서 기념예배를 드렸다.
 

 


기념예배는 백남조기념홀로 명명된 종합관에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원장인 김창훈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했다. 설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인 소강석 목사가 맡았다.

 

예배에서 대표기도는 총회총무 고영기 목사, 총회서기 김한성 목사 성경봉독, 교회음악과 학생들의 찬양, 소강석 목사의 축도 순으로 진행됐다.

 

총회장 소강석 목사 설교  © 리폼드뉴스


총회장 소강석 목사는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라는 설교를 통해 총신대학교가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시작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인 과정을 언급하면서 “120년 동안은 하나님의 기적이고 은혜였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교회와 성도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학교다라고 총회와의 관계속에서 총신대학교가 잘 운영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학교법인 이사장 김기철 목사 © 리폼드뉴스


예배를 마친 후 2부 순서는 통합대학원장 김성욱 교수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먼저 총신대학교 경건훈련 원장 정승원 교수가 총신대학교 약사를 보고했다.

 

총신대학교는 1910515일 마포삼열 교수의 자택에서 본교의 전신인 평양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가 개교되었다. 1907620일 제17인 졸업생을 배출했다.

 

1938920일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 거부로 본 대학 전신인 평양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가 폐교되다.

 

장학금 전달  © 리폼드뉴스


1948년 제35회 총회는 평양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 전통을 계승한 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의하고 서울 남산에서 징로회신학교를 개교하다.

 

1951918일 본교 이사회의 결의에 의하여 총회신학교를 개교하여 평양장로회신학교를 계승했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120년 약사를 보고했다. 약사 보고의 특징은 후평양신학교와 조선신학교는 본 교의 전신으로 보고하지 않았다.

 

20215월 학사과정 1610, 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과정 1218명 대학원 석사과정 712, 박사과정 195명 목회학 심화석사과정 30명 총 3765명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학술 강좌 박용규 교수 © 리폼드뉴스


이재서 총장 외에 108명의 전임교원, 73명의 강사, 94명에 비전임교원들이 후학양성을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어서 부총회장인 배광식 목사의 축사 및 격려사, 학교법인 이사장인 김기철 목사, 신대원총동창회장 옥성석 목사, 대학총동창회장 박성규 목사가 각각 축사로 축하했다.

 

배광식 목사는 성경만이 유일한 참 진리라는 명제로 개혁신학의 전통 위에서 새로운 100년을 향해 도약하며 역사 앞에 자랑스러운 총신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라고 격려하며 축하했다.

 

 음악학과 교수들의 음악제 © 리폼드뉴스


학교법인 이사장인 김기철 목사는 교단신학교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총신 공동체가 하나 되는 일에 힘을 보태겠다라고 말하면서 축하했다.

 

총신을 대표해 인사말은 전한 이재서 총장은 이 땅에 총신대를 세우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한다고 인사한뒤 지금까지도 잘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다. 잘한다고 칭찬하고 격려해주시고 힘을 보태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또한 장학금 전달이 있었는데 와우리교회(박만규 목사), 새로남교회(오정호 목사)와 미국의 익명의 기부자가 장학금을 전달했다. 

 

 최초의 평양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 전경(좌), 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양지 캠퍼스 100주년 기념 예배당  © 리폼드뉴스


3부는 개교 12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로 금년 1월에 정년 은퇴한 박용규 교수(총신신대원 명예)총신 120년 역사, 신앙, 평가:평양장로회신학교부터 총신대학교까지 1901-2021’라는 주제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박용규 교수는 1951918일 총신(총회신학교)을 개교한 것은 새로운 설립이 아니라 1901년에 설립된 평양장로회신학교를 계승한 것으로 역사의식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어 총신대 교회음악과 교수들이 협연하는 전야음악회가 개교 12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개교기념일은 515일이지만 그 전야제로 120주년 기념감사예배, 학술발표, 음악회를 가졌다.

 

  © 리폼드뉴스

 

소강석 목사의 설교 전문은 다음과 같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여러분은 장영희 교수님이 쓰신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라는 책을 보셨습니까? 엄청나게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인데요, 제가 오늘 총신 120주년기념 감사예배에서 설교 제목을 그분의 책 제목에서 차용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도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가, 살아온 은혜와 기적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가고 있으며, 미래에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안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집에서 살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영원한 목자로 삼았으며 목자 되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총신의 120년의 역사가 그렇습니다. 우리 총신은 1901년 마포삼열 선교사의 사택에서 평양신학교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평양신학교는 1907년에 7명의 졸업생들을 배출했고, 또한 1907년 평양대부흥의 영향으로 평양신학교에도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미국의 맥코믹 여사가 특별 기부를 해서 땅을 마련하고 1920년도에 교사를 건축하게 됩니다. 그런가하면 1919년 3.1 운동도 평양신학교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서 3.1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 교단의 총회장이셨던 김선두 목사님이 평양에서 3.1 운동을 주도해 가셨습니다.

 

또한 평양신학교는 신사참배를 반대하였습니다. 총회는 신사참배를 결의하였지만 우리의 총신의 전신인 평양신학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자진 폐교를 한 것입니다. 이런 순혈적 신학과 신앙이 우리 총신의 역사에 스며들어 있고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훗날 평양신학교를 이어서 조선신학교가 태동합니다. 그러나 당시 김재준 박사님이 문서설을 비롯하여 성경 무오설을 부인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가르치자 거기에 정규오 목사님을 비롯한 51인 신앙동지회가 항거를 하며 제33회 대구 총회에서 탄원서를 제출하게 됩니다.

 

바로 그 분들 때문에 우리 교단은 순혈적 신학과 신앙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 순혈적 신학과 신앙을 지켜오던 우리 교단은 1959년 제44회 총회에서 WCC 가입 문제를 놓고 첨예한 대립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정통신학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의 선진들은 어쩔 수없이 분리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교단의 적통성과 법통성을 우리가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단의 선진들은 눈물을 훔치며 허허벌판 황무지로 나와야 했습니다. 나무 한 그루 살지 않고, 풀 한 포기 살지 않는 허허벌판 광야 같은 곳에서 그들은 광야에 눈물을 뿌리며 사막에 강을 내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런 눈물의 헌신과 희생으로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총신대를 세웠고 총회회관을 세워서 오늘날 한국의 장자교단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장로 교단을 이룬 것입니다.

 

바로 총신120주년을 맞는 오늘 우리는 이러한 피와 땀과 눈물의 역사를 알고 기억해야 합니다. 교단이 분리된 이후에, 우리의 총신은 남산에서 대한신학교 교사였던 작은 컨테이너 건물을 임대하여 다시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더는 그대로 신학교를 유지할 수 없어서 용산에 신학교 교사 마련을 하는 운동을 전개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도 전국교회의 눈물어린 헌신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마련한 용산교사에도 강당이 없어서 복도 구석에까지 서서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교수님들은 몇 달씩 월급도 받지 못했고 학생들은 학교 재정을 마련하기 위하여 전국교회로 모금운동을 하러 다녔습니다.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5년 동안 400여명의 학생들을 배출했습니다.

 

오늘날 총신대학교는 이런 눈물과 땀의 과정을 거쳐서 세워지고 발전되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 먼저 누가 있었습니까? 김윤찬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김윤찬 목사님은 교단 분리 이후, 복구 신학교를 세우기 위해 미국 매킨 타이어 박사에게 눈물의 후원 요청 편지를 써서 보내었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한국에서 보수신학을 사수하는 곳은 우리 교단과 총회신학교 뿐입니다. 우리 총회와 총신이 무너지면 한국의 보수신학도 무너지고 한국교회는 좌경화될 것입니다. 그러니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마련한 종자돈 10만불로 용산신학교 교사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안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구서문교회 담임목사이자 총신 교수로 섬기고 있던 명신홍 박사님이 총신을 세우는 모금운동의 선구자로 일어나셨습니다. 그래서 명신홍 목사님은 <신학지남>을 비롯해서 모든 매체를 통해서 총신을 세워야한다는 글을 기고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외쳤습니다.

 

이때 백남조 장로님을 중심으로 하여 ‘13실업인동지회’가 발족이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명신홍 박사님을 도미케 하여 미국에서 모금 운동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당시 명신홍 박사님은 직장암 4차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이었고 인공항문까지 달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미국 교회를 감동시켜 모금 운동을 하였습니다.

 

그뿐입니까? 백남조 장로님은 자신의 집도 없이 공장 안에 있는 조그만 양철집에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지만 총신 신축을 위하여 지금의 사당동 땅을 총회에 헌납한 것입니다. 그리고 총회는 총신 신축 5개년 계획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며 눈물겨운 헌신과 기도를 드렸습니다. 거기에 김인득 장로님의 기부로 법인이 설립되고 마침내 1969년에 총신대학이 인가를 받아 우리 총신의 찬란한 비전의 태양이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바야흐로 이제 학교 설립 120주년을 맞는 총신의 역사적인 의의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총신은 정통 보수신학과 개혁신학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총신은 정통보수신학과 개혁신학을 지키고 세워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그 총신은 한국 장로교의 발원지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총신은 장로교회를 세워 나가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총신은 1907년 평양대부흥의 역사와 함께 한국교회에 부흥의 파도를 일게 했던 진원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총신은 앞으로도 한국교회의 부흥의 대열에 서서 부흥의 선두주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 뿐입니까? 우리 총신은 3.1운동 등 민족운동과 애국운동에도 앞장 서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총신은 다분히 목회자만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통일한국시대를 대비하여 민족의 역사를 품고 민족의 아픔과 눈물을 씻겨주는 선지 학교, 제사장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120년 동안 우리 총신이 존재하고 살아왔던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기적이고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의 헌신과 교회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총신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총신은 교단의 신학적인 지도를 받고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지금은 세상이 변해서 사학법도 지키고 사학의 울타리 안에 존재해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신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총신을 목자처럼 이끌어 가시는 분도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총신은 교육부의 지시를 받으면서도 우리 총회의 신학적 지도와 보호, 그리고 감독을 받아야 합니다. 예성 교단 직영 신학교인 성결신학대학교가 있습니다. 그곳은 사학법을 지키면서도 온전히 총회의 지도를 받고 총회가 운영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 총신이 이런 역사적 토대 위에 서 있는데, 몇 사람들의 욕망에 의해서 총신이 하마터면 절단이 날 뻔 했고 교단까지 갈라질 위험도 있었습니다. 어떤 부류에서 교단을 나눌 터이니 소목사도 따라올 의향이 없느냐는 제안을 직접 받은 적도 있습니다. 결국 총신은 임시이사 체제를 맞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임시이사체제 속에서도 우리 총신을 보호해주셨고, 그리고 이제 정이사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임시이사를 종결하고 정이사 체제를 구축하는데 가장 앞장 선 사람이고, 가장 공을 세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앞으로 새 이사장님과 새 이사님들이 일정 부분에서는 사학법을 지키는 영역도 있어야겠지만, 동시에 더 중요한 것은 총회의 지도를 받고 총회의 신학적인 감독과 보호 속에서 총신이 더 번성하고 부흥하고 도약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정이사님들 뿐만 아니라 총신의 총장님,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모든 교직원님들께서 이런 총신의 역사를 알아주시고 앞으로 총신이 다윗처럼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잘 따라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하마터면 총신 120주년을 임시이사체제에서 맞을 수 있었지만, 그나마 다행히 정이사 체제로 맞을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재단이사장으로 선출되신 김기철 목사님께서도 우리 총신을 잘 받들고 섬겨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총신이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모시고 왔을 때 120년의 생존의 기적을 누리고 경험한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목자로 삼으며 총회의 신학적 지도를 잘 받으시며 나아갈 때 다가올 200주년에는 더 큰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경험했다고 고백하는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결단과 다짐을 하고 헌신하며 나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     ©리폼드뉴스

 

학교법인 이사장 김기철 목사 총신대학교 120주년 기념 축사 전문

 

총신 개교 120주년 예배 법인이사장 축사

 

우리 총신대학교가 걸어온 은혜의 발걸음을 증거하신 총회장님, 이어서 우리 학교의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신 부총회장님, 이재서 총장님과 교수님, 동문, 학생, 내빈 여러분, 지난 화요일 이사회에서 법인이사장으로 선출된 정읍성광교회 김기철 목사입니다.

 

우선 1901년 우리 모교를 세우시고, 평양에서, 서울로, 대구로, 다시 서울로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을 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긴 세월 인도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귀한 자리에 참석해서 축사 기회를 갖게 된 것도 동문의 한 사람으로서 큰 기쁨이요 가슴 벅찬 순간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상당한 시간과 진통 끝에 2년 반의 임시이사체제를 종결하고 정이사 체제가 출범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간 학교법인 정상화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앞장서서 수고해 주신 총회장님과 총회 임원님들, 총장님과 교수님들, 대학과 대학원 학생들, 선후배 동문 여러분께, 우리 총회 소속 전국교회 앞에 법인이사장으로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먼저, 지난 이사장 선거 과정에서 이사님들을 상대로 후보자 정견발표회 때 말씀드린 내용을 충실하게 이행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 일을 위해 학교 공동체 여러분의 기도와 협력이 절실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평양 장로회 신학교 제1회 졸업생 앞줄 한석진, 이기풍 길선주, 송인서, 뒷줄 방기창, 서경조, 양전백(본 사진은 목사안수 기념이 아닌 대한장로회신학교(평양신학교) 졸업기념(1907. 6. 20.) 사진이다.

 

우리 이사회의 당면 업무는 학교 현황을 신속하게 파악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 대학에서 법인 이사를 경험하신 분은 한 분도 없고, 다른 대학 법인 이사 경력을 갖고 있는 이사님은 일곱 분 계십니다.

 

그러나 이사님 중에는 각계 전문가가 여러분 계십니다. 세계 공인회계사회 회장 출신의 이사님이 계십니다. 대기업 경영진단을 하시는 이분은 우리 학교를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진단할 수 있는 전문가적 안목이 있습니다. 교육부 직원들을 상대로 정부의 교육개혁 정책 방향을 선도하는 이 분야의 전문가 교수님도 계십니다.

 

13년 분규 중인 대학을 1년 반 만에 정상화시킨 외부 이사님도 계십니다. 벌률 전문가이신 변호사도 한 분 이사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본 교단 출신의 목사 장로 이사님들도 개혁신학을 지켜가는 일을 해내실 수 있는 훌륭한 분들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매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이런 분들의 전문성과 역량을 모으기만 한다면 저출산과 함께 쓰나미처럼 불어닥칠 대학의 위기를 말하는 이 시대에도, 우리 학교의 미래를 위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금년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해 지방 어느 대학은 총장님이 스스로 사퇴 의사를 표명하셨고, 호남 쪽의 종교 사학은 재정 튼튼하기로 유명한 학교인데 역시 입학생 미달로 큰 파문이 일었던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국립 부산대학교와 부산 교대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일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2024년 전국적으로 대학입학 정원이 12만여 명 미달하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대학위기라는 말을 부인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 위기는 지방에서 서울로, 생존 능력이 없는 대학에서 명문대학 쪽으로 점점 확대될 것입니다.

 

학교현장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 없이 중장기계획을 수립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학교의 총장님과 교수님들, 교직원과 학생들, 동문들 모두 이 일에 마음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학교와 교단 총회와의 관계가 바로 되어야 할 당위성은 우리 학교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세운 교단신학교라는 데서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자리를 빌려 15명 이사 중 무려 8명이 비총대라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비정치적인 이사회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총회가 원하는 부분을 이행해 갈 때 어떻게 풀어갈지 고심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 이사님들에게는 설립자인 총회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해 주시라고 설득할 것이고, 동시에 총회를 향해서는 이런 이사회 구성을 염두에 두고 인내심을 갖고 바른 관계를 정립해 갈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립학교법과 정관 규정을 충실히 지키면서 총회결의도 이행하고, 총회와의 관계를 바로 세워가는 일에는 대화와 설득, 인내가 필요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개교이래 6-70년 동안은 우리 학교의 위상은 한국교회에서 독보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은 다른 교단 신학교도 수준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봅니다.

 

우리 총신대학교는 점점 혼탁해지는 그래서 사상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21세기를 성경적 개혁신학을 통해 선도해 갈 사명이 있습니다. 성경의 절대권위를 지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학교현장에서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끝으로 이사님들과 의견조율이 필요한 일이지만, 이사장 개인의 각오는 이사회는 사립학교법과 정관에 규정된 권한을 바로 행사하되 매우 절제된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교단 신학교라는 정체성을 지켜가며 공동체가 하나 되는 일에 미력한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축사를 마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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