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여성의 목사안수에 관한 여권주의자들의 주장과 우리의 견해(1)

박아론 박사

김순정 | 기사입력 2021/07/03 [13:53]

[논문] 여성의 목사안수에 관한 여권주의자들의 주장과 우리의 견해(1)

박아론 박사

김순정 | 입력 : 2021/07/03 [13:53]

 

 

▲ 박아론 박사  © 리폼드뉴스



이 글은 박아론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것으로 여성의 목사안수에 관한 여권주의자들의 주장과 개혁주의의 견해를 제시한다. 이에 요약 소개한다.

 

시작하는 말

 

여권확장주의와 여성신학에 대하여서는 우리가 꽤 오래전 과거인 1960년대부터 심심찮게 이야기를 들어왔었다. 그러나 최근 10내지 15년 전부터 한국교회 내에서 여성의 목사안수에 대한 토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어떤 교단들에서는 이미 여성의 목사안수에 대하여 총회적으로 결의해 놓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본 논문에서 한국교회 내에서 여성의 목사안수문데가 대두하게 되고 여성의 목사안수를 찬성하는 개신교교단들이 증가일로에 있는 것은 여권확장주의와 특히 여성신학의 세계적인 득세와 보급에 있음을 감안하여 여권확장주의의 역사를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나서 여성의 목사안수를 찬성할 뿐만 아니라 강력히 주장하는 여권주의자들과 여성신학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자 한다. 그리고 맨 나중에 가서 여성의 목사안수에 관한 필자의 의견을 본 논문의 제3장 우리의 견해에서 피력하며 표명하고자 하는 바이다. 여기서 우리의 견해는 정통개혁신학의 입장을 뜻하는 것이며 따라서 필자의 의견도 바로 그것 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음을 미리 천명하는 바이다.

 

I. 여권확장주의의 역사

 

여권확장주의의 역사는 주로 최근 2세기에 국한된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여성학자들은 여권 확장주의를 계몽사상과 인권운동에서 파생한 것으로 보고 심지어는 비참한 지경에 있던 여성의 인권과 복지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와 저항의 목소리가 드높았던 중세말인 15세기까지 급히 올라가서 고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 필자는 여권확장주의로서의 여성운동의 본격적인 출발이 19세기에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여권확장주의의 역사를 여권주의의 첫 물결과 여권주의의 둘째 물결로 나누어 생각하고자 한다. 19세기 중엽에 아메리카에서 여권주의의 첫째 물결을 탄 여성운동가들은 현금의 여권주의자들과는 달리 주로 금주, 공창폐지, 여성들에 대한 도덕적 계몽 등 윤리도덕적 이슈들을 내걸고 운동을 벌였던 것이다. 그런데 금주운동과 도덕성 회복운동의 집회에 여성들의 참여가 금지당하는 상황에 자극을 받아 그 당시의 여성운동가들은 여성의 인권을 이슈로 삼고 운동을 벌여나가기에 이르렀다.

 

수잔 안토니는 1853년 금주 회의에서 여성의 벌언권과 강사로서의 자격 확보에 실패한 뒤 또 다른 여성운동가 엘리자벳 스탠톤의 권위를 받아 여성인권운동에 합세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스탠톤은 1895년가 1898년에 이신론과 합리주의적 프로테스탄티즘과 경건주의적 기독교와 문화적 현실주의의 혼합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 성경이라는 것을 출간하였으니 그 당시 많은 사회의 지도급인사들이 그들의 인권에 관한 남성위주의 견해를 성경에서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1848년에는 엘리자벳 스탠톤과 미국에서 처음으로 여성들 중심으로 필라델피아 반 노예제도도협의체를 조직한 바 있는 루크레티아 모트에 의해 세네카 폴즈에서 여성인권회의가 소집되어 10개조항의 결의문을 채택하였는데 그 중에는 여성의 재산소유권과 자녀에 대한 법적 양육권,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참정권으로서의 투표할 수 있는 권리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1865년에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법적으로 폐지되자 여성인권을 확보하는 일에만 그 당시의 여권주의자들은 관심과 노력을 경주하기에 이르렀다. 1890년에 엘리자벳 스탠톤을 회장으로 하는 전미국 여성참정권협의회가 조직되었으나 25년 후인 1915년에 가서 보다 활동적인 캐리 캐트가 회장으로 취임한 뒤에야 여성참정권 운동이 급격히 진전을 보았으며 드디어 1920826이리 미합중국연방의회가 여성의 투표권을 승인하는 의회법을 통과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여성참정권운동이 미국에서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여성들의 투표권을 획득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자 1960년까지 여성인권운동이 소강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여권주의자들은 1930년대의 미국의 대경제공황에 자극받아 여성들의 직장생활과 사회복지를 강조함으로 사회복지 여권주의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산아제한 및 가족계획을 촉구하는 운동을 벌여 사회적으로 호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해방운동이 돌연히 모습을 나타내게 됨으로 여권주의 둘째 물결이 아메리카에서 거세게 일어났고 그 물결이 1990년대 후반기까지 이르고 있다아메리카에서 일어난 여권주의의 첫째 물결은 복음주의 기독교의 도덕적 가치관을 그 바탕에 깔고 있었지만 여권주의의 둘째 물결은 급진적 자유주의를 그 이데올로기로 삼고 있기 때문에 양자간의 상관성과 연속성을 부정하는 의견들이 있다.

 

물론 전자는 여성의 남성과의 평등함을 주장하는 여성평등운동이라고 하다면 후자는 여성들의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남성통치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여성해방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권주의의 첫째 물결과 둘째 물결에는 모두 여성들의 평등을 주장하는 국면과 여성들의 해방을 추구하는 국면이 공존하고 있으며 오늘날 우리들이 목도하는 바 여권주의자들에 대한 급진자유주의적 여성해방운동은 본래 여성평등운동이 역사적 과정을 거쳐 급진적으로 변모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여권주의의 첫째 물결과 둘째 물결 사이에는 역사적 연속성과 사상적 동일성이 있음을 지적함이 옳은 줄 안다.

 

1960년대 여성해방운동 또는 속칭 리브운동을 일으킨 여권주의자들이 한데 모여 전국여성기구를 조직했는데 이 기구에 소속한 회원들은 1960년대의 아메리카 학생운동과 흑인인권운동과 또 신죄악이라고 일컫는 운동권 요원들의 영향을 받아 소위 여성해방을 위한 사회적으로 과격하고 급진적 의제들을 채택, 결의하고 추진하기에 이르렀다여권주의의 둘째 물결을 한 여권운동가들은 인공유산과 여성의 동성연애에 대한 권리 등을 여권운동의 큰 이슈들로 삼고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격렬한 시우와 운동을 벌이며 현금에 이르고 있다.

 

아메리카에서 20세기 후반기에 여권주의의 둘째 물결이 일어났을 때 그 물결의 사상적 뒷받침을 해준 여성학자는 프랑스의 씨몽 드 비브어였다. 드 비브어는 주장하기를 여성들은 남성들과의 상관관계에서 여태 인식이 되어 왔고 자신들의 독립적 존재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인류문명을 주도하는 것은 남성들이고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열등한 신분과 위치를 갖고 문명의 외각지대에서 제2부류적인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하였다.

 

아메리카에서 그 비브어의 영향을 크게 받은 베티 프리단은 여성들에 대해 가정주부요 아이들의 어머니로서의 역할들만 찬양하는 여성에 대한 환상적 사고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여성들의 그와 같은 역할들로부터 해방받을 것을 부르짖었다.

 

또 드 비브어의 영향을 받아 아메리카의 여성학자 케잇 밀레는 아메리카 여권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몇 가지 사상으로 집약, 정리하였다. 즉 아메리카 여권주의가 믿는 것은 남성들은 다 여성가해자들이라고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문화적으로 조작된 사고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며 여성들은 여성의식을 향상하고 강화함으로 실존의 창조가 가능하다는 것 등이다.

 

1960년대 아메리카에서 여권주의의 둘째 물결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소위 여권의식이라는 것이 대학사회와 교회와 신학계에 침투하게 되었다. 1960년대부터 미국신학계에서 여성신학을 부르짖기 시작한 여성학자들은 그 수가 굉장히 많다. 그들 중에서 라인홀드 니버와 폴 틸리히와 같은 아메리카의 큰 신학자들을 가부장적 문화가 몸에 밴 신학자들로 보면서 그들이 여성적 삶의 체험을 남성주의적 안목에서 전혀 무시하거나 왜곡하였다고 비난한 여성학자들로서 골드스타인, 플라스코, 달리 등을 들 수가 있는데 특히 달리는 기독교의 교리와 신앙자체가 가부장적이며 여성들을 천시한다고 하며 탈기독교를 부르짖었고 남성들은 흉악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여성동성연애자들로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격한 성적분리주의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아메리카에서 여권주의의 둘째 물결과 함께 여성의 해방을 주제로 하는 여성해방신학을 제창하는 여성신학자들이 속출하였고 그들 중에서 두 중요한 여성해방신학자는 레티 럿셀과 로즈매리 래드포드 루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레티 럿셀은 1974여권주의의 관점에서 본 인간해방을 써서 큰 관심을 모았고 로즈매리 루터는 1972해방신학을 발표하여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들 여성해방신학자들은 중남미 제국에서 일어난 해방신학을 많이 모방해 그것을 그들의 여성해방신학 속에 끌어들였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지배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인간의 인간에 대한 학대라고 하였고 남미해방신학자 구티 에레쯔의 해석학을 빌려 쓰면서도 진정한 세계적 인류적 해방의 열쇠는 가장 큰 피압박자요 피해계급인 여성들의 해방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여성해방의 성취는 가난과 인종적 차별, 환경파괴, 전쟁 등의 종식을 가져올 것을 믿는다고 하였다.

 

이들 여성해방신학자들은 여성해방의 첫째 목표는 자유라고 하면서 롬 8:22-23을 인용해 온 우주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고 있다고 하였고 이 여성해방의 첫째 목표는 여성해방의 둘째목표인 새로운 공동체적 사회윤리로 이끌어 가는데 그것은 모든 피지배적 계급의 인류들의 저항적 투쟁과 발맞추어 새로운 지구촌적 인류의 탄생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여성해방의 셋째 최종적 목표는 모든 인류가 이원론적인 양극화를 극복하고 조화롭게 인류공동체로 존재함으로 하나님의 새창조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럿셀과 루터와 같은 여성해방신학자들의 큰 문제점은 그들이 성경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성경을 여성해방의 관점에서 해석하였고 해방과 자유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성경이 가르치는대로 살피지 않고 그들의 여권확장주의적 워리들과 이데올로기로서 해석했다는 것이다. 최근 30-40년 동안에 셀 수 없이 많은 저술들과 출판물들이 여권운동가들과 특히 여성신학자들의 손에 의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여성신학을 처음 주도한 신학자들은 백인 중산층 출신 학자들이었으나 타민족, 타문화, 타종교의 여성들의 불평과 항의로 인해 모종의 “5색무지개연합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신학의 보편화작업이 추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여성신학의 보편화적업의 일환으로 여성의 의식화, 여성의 영성이 크게 강조를 받게 되었다. 그 결과 가부장제도라는 말과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교회와 성경과 신학전반에 걸쳐 적용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첫째로는 하나님에 대해 남성으로 표현하는 대명사(he)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개념을 비남성화 내지 여성화하는 경향을 볼 수 있으며 둘째로 신구약의 역사와 초대교회사 가운데서 여성들의 역할의 중대성을 부각하고 가부장적 역사해석을 성토하는 행위를 볼 수 있다그리고 셋째로는 교회의 예배와 정치, 행정에 여성신학 또는 여성해방신학이 강조하는 대로 오늘날 크게 발전한 여성의 의식화의 수준에 걸맞는 여성들의 참여와 리더십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격렬해 감을 감지할 수 있다.

 

필자는 여태 여권확장주의의 역사를 살펴보고 고찰하였다. 오늘날 우리교회 안과 밖에서 여성 목사를 제창하는 많은 인사들이 있는데 이들은 필자가 고찰한 바 여권확장주의의 역사에서 나타난 대로 여권주의자들의 크게 성경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여성주권주의 사상원리들과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암암리에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스럽다.

 

II. 여성의 목사안수를 주장하는 두 가지 부류의 여권주의자들과 그들의 이야기

 

오늘날 아메리카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권주의자들을 분류하면 세속적 여권주의자들과 종교적 또는 기독교적 여권주의자들과 성경적 또는 복음주의적 여권주의자들의 3부류로 나눌 수 있다먼저 세속적 여권주의자들은 객관적 존재로서의 남성적 신을 거절하며 남성적 신을 섬긴다고 그들이 생각하는 기독교라는 종교와의 관계를 떨쳐 버리고 여성의 경험에 입각하는 여신숭배를 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고대 사람들이 석상으로 되어 있는 여신 앞에 절하던 여신숭배는 아니라 세속적 여권주의자들은 여성 자신들 안에 존재하는 신성을 믿었기 때문에 그들의 여신숭배는 여성들의 자아숭배의 합법성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상징으로서의 여신을 숭배하는 것이 된다. 여권주의 복음의 저자인 매리 카시안은 이와 같은 여신숭배의 종교의식까지 갖추게 되는 세속적 여권주의자들을 가리켜 going too far이라고 표현하였다.

 

둘째로 종교적 또는 기독교적 여권주의자들에 관하여 언급하면 저들은 기독교를 가부장적 사고를 갖고 여성들을 탄압하는 종교로 보는 세속적 여권주의자들과는 달리 기독교와 교회를 여권주의적 변혁을 위한 좋은 수단 또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기독교의 전통을 형식적으로는 따르면서 성경과 기독교교리 및 신학을 여권주의적 세계관에 맞도록 마음대로 재해석하는 자들이다. 특히 세속적 여권주의자들과 저들이 구별되는 분야는 언어표현 및 사용법의 분야이다. 세속적 여권주의자들이 가모장 문화의 창조를 말한다면 종교적 여권주의자들은 여성교회의 설립을 주장한다. 세속적 여권주의자들이 새 인류, 새 시대를 말한다면 종교적 여권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됨과 하나님 나라를 말한다.

 

셋째로 성경적 또는 복음주의적 여권주의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종교적 또는 기독교적 여권주의자들 중에서 전위적인 그룹 또는 자유주의 계열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보수주의적 성향을 가진 자들로 루터와 럿셀 같은 여성신학자들처럼 기독교의 교리와 성경을 변경, 개조할 생각은 없으면서도 여권주의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성경을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결혼생활에 있어 남성과 여성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전통적인 성경해석학을 회의하여 거절한다고 한다. 그들은 성경도 믿고 여권주의도 믿기 때문에 성경적 여권주의자들이라고 자칭한다.

 

레베카 구루트이스는 그의 저술 갈등에 빠진 여성들이라는 책에서 성경적 또는 복음주의적 여권주의의 입장을 취하면서 여권주의자들을 주류적인 여권주의자들과 여성중심의 여권주의자들과 성경적 여권주의자들로 구분하고 있다.

 

그녀를 따르면 주류적 여권주의자들은 남성모방적 여권주의자들로서 그들 속에는 앞서 우리겨 언급한 바 있는 종교적 여권주의자들 중에서 자유주의 계열이 끼어든 듯 보이고 여성중심적 여권주의자들은 여성의 힘과 남성에 대한 우월성을 강조하는 세속적 또는 급진적 여권주의자들이다. 그리고 그녀의 동지가 되는 성경적 또는 복음주의적 여권주의자들은 여성과 남성이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보다 조화적으로 상관관계를 맺어야 하고 여성과 남성이 똑같이 문화적으로 조작된 여성과 남성의 인격적 차이성을 벗어나 하나님이 주신 은사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레베카 구루투이스의 여권주의자들에 대한 구분법도 타당성이 없지 않은 것은 아니나 매리 카시안의 구분법이 더 오늘날의 여권주의자들의 현실에 부합하며 또 보편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구분법이라고 사료되어 그것을 본 논문에서 필자가 사용하며 따르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 필자는 오늘날 여성의 목사안수에 대한 여권주의자들의 주장을 살피고자 할 때 먼저 종교적 또는 기독교적 여권주의자들의 주장을 살피고 다음으로 성경적 또는 복음주의적 여권주의자들의 주장을 살피려 한다.

 

세속적 여권주의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은 기독교와 완전 결별하고 난 뒤에 여성운동을 급진적으로 전개시키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여성의 목사안수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별로 언급도 없는 실정이어서 여성의 목사안수의 문제에 관한한 이렇다 하게 우리가 다룰 만한 그들의 주장이나 입장이 없는 줄 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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