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여성의 목사안수에 관한 여권주의자들의 주장과 우리의 견해(3)

박아론 박사

김순정 | 기사입력 2021/07/17 [18:32]

[논문] 여성의 목사안수에 관한 여권주의자들의 주장과 우리의 견해(3)

박아론 박사

김순정 | 입력 : 2021/07/17 [18:32]

 

▲ 박아론 박사     ©리폼드뉴스

 

 

이 글은 박아론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것으로 여성의 목사안수에 관한 여권주의자들의 주장과 개혁주의의 견해를 제시한다. 이에 요약 소개한다.

 

III. 우리의 견해

 

정통개혁신학의 여성의 목사안수에 대한 입장은 한마디로 반대의 입장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성의 목사안수를 반대하는 이유가 여성의 남성과 비교해 열등하다거나 평등하지 못하다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정확무오하게 기록된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면 여성은 남성에 대하여 열등한 존재가 아니며 존재론적으로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하나님의 피조물인고로 평등함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다만 남성과 여성의 평등성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신체구적 차이와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는 남성과 여성의 삶에 있어서의 역할과 위치에 불가교체성을 믿기 때문에 우리가 여성의 교회에서의 지도자적 위치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물론 여성의 교회에서의 지도자적인 역할에 대해 반대하는 성경의 가르침들 중에서 보다 심오하고 다양한 해석들이 있음을 우리는 또한 헤아려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이와같은 성경적 반대론에 입각해 자신들이 여성이면서도 여성의 목사안수를 결코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이 문제에 대해 왕년에 어떤 남성 전통적 개혁신학자들보다도 연구를 많이 하였고 설득력을 발휘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개혁신학자 또는 복음주의 신학자라 일컬음을 받을 수 있는 두 여성학자가 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해석과 이야기들을 본 논문의 지면 관계상 아주 간략하게 살펴봄으로 우리 모두가 여성의 목사안수문제에 대해 취해야 할 정통개혁신학적 입장을 저들 학자로 하여금 대신 말하도록 함은 지혜롭게 적절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먼저 여성의 안수문제에 대해 여권주의의 입장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전통적이며 성경적이며 정통개혁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여성학자 수잔 포에 따르면 딤전 4:14이 비록 안수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나 안수에 대한 가장 많은 지식을 우리에게 준다고 했다.

 

디모데의 안수는 하나님의 은사를 소유함을 뜻했으며 이 은사의 소유는 예언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장로들의 손얹음(안수)이 있었고 또 기도가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안수의 참 의미는 어떤 개인이 교회 안에서 특별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는 것을 교회가 공적으로 인정함을 가리킨다. 따라서 장로장립이나 목사안수는 여권주의자들의 주장과 같이 우리가 주장해야 할 교회 안에서의 우리의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요 그런고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오늘날 목사와 평신도의 구별을 철폐하는 방향으로 여권주의자들을 포함해 세속주의자들이 교회 내에서 운동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이와 같은 경향을 좌시하면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 내에서 상하계급조직을 둘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적 교회에 존재하는 계급조직은 사도, 선지자, 교회, 능력을 행하는 자, 치병자, 돕는자, 행정자, 방언하는 자 등이었다(고전 12:28). 고린도교회가 오늘날 현대인들처럼 이 사도적 계급조직에 대해 반대했기 때문에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하며 교회 내의 계급조직에 들어 있는 여러 회원들은 그리스도라는 머리를 공유하며 그를 섬기는 목적의 통일성이 있고 또 각 회원간의 그리스도의 공동체로서의 사랑의 연계성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는 계급조직 사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긴 강론을 펴나가지 않았던가.

 

수잔 포는 여성의 목사안수를 찬성하고 주장하는 네 가지 이론들을 차례대로 반박한다. 첫째,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여성의 목사안수가 옳지 않다는 변론이 있다. 딤전 2:12 이하에서 근거를 찾는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이다. 바울이 말하는 순종이 열등함을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은 두 가지 창조와 타락의 객관적 사실들에 근거해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금지시켰을 뿐 여성의 존재론적 열등성을 결코 거론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 하나님은 남성적 대명사와 용어들로서 성경에 기술되기 때문에 또 예수 그리스도가 남자였기 때문에 그리스와 하나님을 대표하는 목사가 남자라야 된다는 변론이다. 그러나 목사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자라고 하는 가르침을 성경에서 찾기 어렵다. 구약의 제사장과 선지자는 각각 회중과 하나님을 대표한다는 해석이 있기는 하나 하나님의 본성이 남성적이기 때문에 여성 목사안수를 불가하다는 생각은 비성경적이다.

 

셋째, 그리스도가 남자들만 사도들로 삼았기 때문에 그것이 교회에서 성경적 모범 사례가 된다는 변론이다. 그러나 많은 여권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도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교역자들도 유대인이 되어야 하는가?

 

또 사도직은 지금 교회 안에 현존하지 않는다. 교회의 창립을 위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초대교회에 존재했던 장로와 목사 또는 교사의 직분은 사도직과는 다른 직분이었다.

 

넷째, 기독교 역사와 전통으로 볼 때 여자들이 교역자들로 안수받고 사역한 경우가 없다는 변론이다. 몬타니스트들, 영지주의자들과 같은 이단종파를 제외하고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와 그 실천사항들이 중요하기는 하나 그것이 절대적이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권위를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잔 포는 우리가 여성의 목사안수를 반대할 수 있는 유일하고 충족한 변론은 성경이 이를 금지하기 때문이라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딤전 2:12가 여성이 장로가 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인지 아니면 더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뜻이 있는지는 토론의 여지가 있으나 여성으로 하여금 장로나 목사, 교사가 되는 것을 금하고 있다는데 대해서는 의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직분의 의무와 책임은 가르치는 일, 다스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가르치는 일과 다스리는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며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또 여성이 열등한고로 예수 그리스도가 사도들을 남자 중에서 뽑았기 때문도 아니다. 오직 확실하고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1) 남자가 먼저 지음을 받았다는 것과 (2) 남자가 속임을 받지 않고 여자가 속임을 받았다는 것 두 가지이다.

 

이 두 가지 이유가 우리에게 공평하거나 합리적 이유인지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다. 이 이유들은 하나님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우선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남편의 머리됨과 아내의 복종의 이유이며 남자가 머리라는 사실이 남자들과 여자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창조의 순위는 두 영역 즉 결혼과 교회의 영역에서 여성이 권위를 갖고 지도자 노릇을 하는 것을 금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여자들이 교회에서 모든 남자들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또 모든 남자들이 가르치며 권위를 행사하는 권리를 소유한다는 것도 아니다. 딤전 2:12가 뜻하는 바는 첫째, 교회에서 가르치며 다스리는 직분은 여성에게는 개방되지 않았다는 것과 둘째, 딤전 3:1 이하에 서술된 자격을 갖춘 남자들만이 그와 같은 직분을 갖기를 희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그의 사도들을 남자들 중에 선택하였다는 것은 딤전 2:12이하에 기록된 종속의 원리의 반영이요 실현인 것이다. 우리는 성경적인 원리들로 성경적인 사례들을 해석해야 하며 그 반대의 일을 하면 안될 것이다.

 

교회 안에서 여자들의 종속의 원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관철하고 있다. 남자들만이 구약시대에서 제사장들이요 장로들이었다. 남자들만이 족장들이요 왕들이었고 선지자들이요 사사들이었으며 서경의 알려져 있는 저자들도 모두 남자들이었다. 신약시대에는 남자들만이 사도들이었고 전도자들, 선교사들이었다.

 

딤전 2:12이하에 기록된 금지령은 고전 11:3이하에 기록된 여자들에 대한 명령에 개재하는 원리들로서 확인, 강화될 수 있다. 그리고 남편의 머리됨에 관한 성경적 가르침은 창조의 질서의 중요성을 지지하며 상하계급적 관계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위배되지 않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여권주의자들은 신약교회에서 여자들의 활발한 참여를 지적하면서 여성의 목사안수를 주장한다. 그러나 신약교회에서 여자들이 맡았던 일은 예언하며 복음의 동역자요 동사자로서 일하는 것이었다(4:2-3, 16:3, 6, 12). 여자들이 어린이들을 가르쳤고 한 여성이 남성을 가르친 사례가 있었으나 여자들이 교회의 회중을 가르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신약교회에 뵈뵈라고 이름하는 한 여집사가 있었다. 그러나 브리스길라와 뵈뵈가 교회에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면 보여주었지 여성의 지도자로서의 사역을 증명해주지는 못한다. 신약교회에 여성교역자가 없었고 기독교의 교회사도 이단종파들이 아니고서는 여성들을 감독이나 목사로 안수하여 사역하게 한 사례를 갖고 있지 않다.

 

변천하는 시대상이 하나님의 불변한 진리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된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상의 흐름을 따라 그 신념과 정책들을 바꾸어서는 안된다. 교회와 세상은 두 매우 상이한 기초위에 서 있는 서로 반대되며 대결하는 두 개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수잔 포는 여성들이 교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 묻는다. 그녀는 여성들이 할 수 없는 것은 설교하는 일이라고 한다. 여성들은 잠잠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마나 공적으로 기도할 수 있고 예언(성경봉독)을 할 수 있고 가정예배나 주일학교에서 또 개인적으로 성경을 가르칠 수 있다. 교회 행정에서 서무 보는 자,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고 선교하는 일에 봉사자로 일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은 목사나 장로나 부흥사가 될 수 없다. 이와 같은 직분들은 가르치고 다스리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딤전 2:11-12).

 

우리 교회는 여성들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와 재능들을 내어버리면 안될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에 큰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교회가 해야 할 일은 교회의 모든 회원들이 갖고 있는 은사와 재능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은사를 하나님의 말씀이 정해주시는 방식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필자는 여성의 목사안수를 반대하는 우리의 견해와 입장에 대해 전통적이며 보수적으로 복음주의적 여성신학자 매리 카시안의 소견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녀는 저술 여권주의의 복음에서 그녀가 오랫동안 자신을 여권주의자로 여기고 여권주의자들과 뜻을 같이 한 것은 사실이었다고 말한다. 교회 내에 존재하는 남성우월주의 사고가 매우 못마땅하였고 사회적으로는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남성들로부터의 학대와 인권유린과 신체적 정신적 폭행 등에 대해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여권주의자들의 진영으로부터 정신적으로 사상적으로 이탈하게 된 것은 여권주의자들은 성경을 여권주의적으로 재해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침해하고 있다는 깨달음이 그녀에게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성경의 권위이다. 복음주의적 여권주의자들에 대해서도 다른 세속적이며 급진적 여권주의자들과 연대적 책임성을 묻는 것은 아니나 여성의 평등함과 참된 가치를 주장하기 위해 저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매리 카시안이 주장하는 바는 여권주의는 마치 미끄러 내려가는 언덕길과 같아서 여성의 경험과 주권을 절대시하는 원리나 가치관을 여성들이 받아들일 때 성경의 가르침들을 전적으로 거절하고 기독교와 교회를 완전히 떠나가는 밑바닥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권주의자가 되면 비록 여성해방이 목적이 아니라 여성의 평등성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고 여성의 목사안수를 주장하는 복음주의적 여권주의자들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급진적 또는 세속적인 여권주의자들처럼 탈기독교적인 결론들에 도달하며 동성연애와 혼외정사, 여신숭배 등을 권장하는 결과들을 가져오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많은 여권주의신학자들의 사례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카시안은 기독교와 여권주의는 서로 반대명제적이라고 말한다. 성경적 여권주의자들이 지금 성경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사실을 보더라도 이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여권주의가 전제하는 바 여성의 경험은 성경의 가르침과 어긋난다. 따라서 우리가 여권주의를 조금이라도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타협을 필요로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여권주의자들은 여성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있다고 한다. 성경과 여권주의를 함께 섬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성이 성경과 여권주의를 동시에 섬길 때 그 마음이 성경에서 떠나 여성의 권리를 찾고 여성의 평등성을 실현하는 일에 쏠리기 때문에 성경을 여성의 자기 주장에 유리하도록 이용하게 되기 마련인 것이다.

 

끝맺는 말

 

우리는 여성의 목사안수를 주장하는 여권주의자들의 두 부류 중에서 기독교적 여권주의자들은 여성해방이라는 목적론을 갖고 여성의 교회 내에서의 지도자적인 위상을 요구하고 있고 복음주의적 여권주의자들은 여성의 평등성의 실현이라는 목적의식을 갖고 여성의 교역자로서의 사역을 역설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이것은 수잔 포가 지적한 대로 다 사람들의 이유요 생각들인 것이다. 우리가 여성의 목사안수를 반대하는 이유는 성경이 분명하게 이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딤전 2:11-14, 고전 11:3-16, 14:34-35).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는 이유들 때문에 여성의 교회 내에서의 지도자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한편 매리 카시안이 강조한 대로 여성해방이라는 급진적 사상 때문이 아니라 여성의 평등성의 실현을 원할 뿐이라고 하면서 여성의 목사안수를 요구하는 복음주의적 여권주의자들이라 할지라도 성경과 여권주의라는 두 주인을 섬긴다는 점에서 성경과 하나님에 대하여 정절을 지키지 않고 불륜을 저지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비판의 목소리를 낮추어서는 안될 줄 안다.

 

교회 안에서 여성의 목사안수를 찬성하고 주장하는 분들은 다 여권주의로 볼 수 있다. 여권주의자가 아니고서야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을 거역하면서 여성의 교역자로서의 사역을 정당화 할 수가 있겠는가? 물론 복음주의적 여권주의자들은 성경이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목사안수에 유리하도록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들을 왜곡하여 이해하며 재해석하는 것은 성경의 신적 권위성을 훼손하는 일일 것이다. 이 때문에 성경적 또는 복음주의적 여권주의자들의 무오한 성경에 대한 신앙고백이 의심이 간다.

 

복음주의적 여권주의자들 중에서 현대교회가 여성들이 갖고 있는 풍부한 은사와 재능과 능력들을 교회 발전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면 인성인력을 최대한 개발하여 교회의 모든 분야와 수준에서 동원하지 않는다면 현대교회와 나아가 기독교 자체가 존망의 위기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대답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지키실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염려할 필요가 없다. 또 여성인력의 개발과 동원도 하나님이 성경가운데서 정해주신 방식대로 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교회발전과 주님 오시기 직전 시대인 우리 시대에 기독교의 세계복음화의 위업을 우리가 분명히 달성하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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