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목사 설교] 금식과 하나님

슥 7:1-14

김순정 | 기사입력 2021/07/17 [18:37]

[김순정목사 설교] 금식과 하나님

슥 7:1-14

김순정 | 입력 : 2021/07/17 [18:37]

  

  © 리폼드뉴스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에게 8가지의 환상을 다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7장에 오면 하나님께서는 스가랴에게 금식에 대한 교훈을 주십니다. 금식은 단지 밥을 먹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떼를 쓰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목숨을 담보로 싸움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의미로 금식을 이해하고 있습니까?

 

1. 벧엘에서 온 사람들(1-3)

 

다리오 왕 제4년 아홉째 달 곧 기슬래월 4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합니다(1). 다리오(Darius Hystaspes) 49, 즉 기스래월 4일은 BC 51894일입니다. 우리의 11-12월에 해당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룻밤 동안에 8개의 환상을 스가랴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후 다시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그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의 부하들을 보내 하나님께 은혜를 구합니다(2).

 

벧엘 사람이라는 말은 원문에 없습니다. 원문에는 벧엘이라는 단어만 나옵니다. ‘그 때에 벧엘에 보내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들이 있으나 우리 개정판과 NIV, RSV벧엘 사람으로 번역했습니다. 사레셀은 앗수르식 이름입니다. ‘앗술(앗수르, 바벨론의 신)이 왕을 보호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그는 바벨론 출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겜멜렉은 사레셀을 히브리식으로 바꾼 이름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은혜를 구한 것입니다. 또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라고 했습니다(3). 여기 제사장들은 여호수아를 비롯해 하나님께 봉사하던 제사장들을 말합니다. 그 수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또 선지자들은 학개와 스가랴와 같은 성전 재건을 위해 활동하던 선지자들입니다.

 

5월 중에 울며 근신한다는 말은 무엇인가? 과거 유다는 BC 58657일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예루살렘성이 바벨론 군대의 손에 의해 파괴되고 함락됩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5월에 금식을 선포하고 슬퍼했습니다. 이것은 전통이 되어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그 사건을 기념하며 금식했습니다. 그래서 벧엘에서 파송을 받은 사람들은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금식에 대해 조언을 구한 것입니다.

 

2. 여호와의 말씀(4-7)

 

그들의 관심사였던 금식의 문제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스가랴를 통해 답을 주십니다. 5절에 보면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고 하십니다(5). 70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한 것이 과연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하나님을 위한 금식이 아니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7월의 금식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당시에 유대의 총독 그달랴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왕하 25:25-26). 이것을 애도하는 금식이었습니다. 6절에 보면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라고 하십니다. 5월과 7월의 금식은 결국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금식은 자기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자신들이 포로가 된 것에 대한 억울함, 70년 동안 포로 생활한 것에 대한 울분을 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금식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고 그들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먹고 마시고 숨 쉬고 잠자는 것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고전 10:31).

 

7절에 보면 예루살렘과 사면 성읍에 백성이 평온히 거주하며 남방과 평원에 사람이 거주할 때에 여호와가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외친 말씀이 있지 않으냐 하시니라고 합니다. 옛 선지자들은 바벨론 포로 이전에 사역하던 선지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형식적인 종교생활에 빠지지 말고 순결하고 순수한 신앙을 가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를 무시했고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 것입니다.

 

3. 큰 진노를 보내신 하나님(8-14)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합니다.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10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11 그들이 듣기를 싫어하여 등을 돌리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12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나왔도다.”(9-1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어 명하신 것이 이것들입니다. 진실한 재판, 인애, 긍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 것,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 것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싫어했습니다. 원문에 싫어하여’(예마아니)는 피엘형으로 쓰였습니다. 이것은 강한 의미입니다. 단순히 싫어한 것이 아니라 매우, 완강하게 싫어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그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았습니다. 그 마음을 금강석과 같게 하여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금강석은 다이아몬드(diamond)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주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는 어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도 그들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않은 것처럼 그들이 불러도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13).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바람으로 불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에 흩으셨습니다.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 후에 이 땅이 황폐하여 오고 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아름다운 땅을 황폐하게 만드신 것입니다(14).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레위기 26:33절에 내가 너희를 여러 민족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대로 그들에게 벌을 내리신 것입니다.

 

결론

 

형식적인 종교생활, 예배생활, 기도생활, 헌금생활, 전도생활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무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먹고 마시고 잠자고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자기 만족을 위해 혹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코람데오(coram Deo, ‘하나님의 면전’)의 삶입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