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번 포이트레스(Vern S. Poythress)의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말씀과 성경해석 (1)

김순정 | 기사입력 2021/08/28 [17:46]

[논문] 번 포이트레스(Vern S. Poythress)의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말씀과 성경해석 (1)

김순정 | 입력 : 2021/08/28 [17:46]

  

▲ 번 포이트레스 교수    ©리폼드뉴스

 

번 포이트레스 교수는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그는 캘리포니아공과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수학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신학석사를, 남아공 스텔렌보스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한국의 유명한 신약학자이며 대구동신교회의 권성수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I. 서론

 

포이트레스 박사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이해하는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이것이 성경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구원의 핵심에는 두 기둥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아는 것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

 

이 말씀을 보면 영생은 유일하긴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즉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17:26)고 하셨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성경은 우리에게 단순한 정보를 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께 대한 관계적인 지식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이런 지식은 우리가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데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저자에 대한 이해가 없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마주서게 되는 것이다.

 

포이트레스 박사는 이 문제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말씀과 성경해석이라는 주제로 글을 썼다. 이 글을 중심으로 우리는 성경해석을 어떻게 진행하고 그 속에서 발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II.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말씀과 성경해석

 

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주제를 가지고 성경해석을 할 때 적합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연주의자는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해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의 세계관을 가지고는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지 못한다. 다음으로 비평주의자는 기적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데서 출발한다.

  

따라서 그들의 해석 역시 올바른 것이라 할 수 없다. 다음으로 상대주의자의 관점은 상호의 접근 방식이다. 이런 접근법도 올바른 성경해석을 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의 견해가 다 동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주의자가 간과한 것은 하나님도 하나의 견해를 가지신 분이며 그분의 견해는 모든 사람의 견해를 판단하는 자(기준)이 된다. 구원의 문제에 있어 사람들이 그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연구한 방식대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마련하신 오직 한 가지 방식으로만 온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임하는 것이다(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40).

 

하나님을 아는 길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방법 즉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서철원 박사는 하나님의 경륜만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의 깊이와 존재방식을 알리는 길은 창조에서의 현시만으로 안되고 말씀하셔야만 된다. 특히 타락한 인류에게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분명히 알리는 길은 말씀 계시 방식뿐이다. 인간의 유하성 때문에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기 위해서 창조주가 말씀으로 자신을 알리셔야 한다.”고 했다(서철원, 신학서론, 182).

 

자유주의자는 성경 속에 단지 인간의 말들만 읽으려 한다. 이 말들을 그들이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에 따라서 받아들이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한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한 가지를 실수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이 말씀인 것이다(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40).

 

다음으로 뉴에이지 신봉자들이 간과하는 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들과 구별이 되는 분이시라는 점이다. 즉 우리가 자신의 내면을 깊이 관찰하는 가운데 우리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우리 자신이 신적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는 그런 식으로는 창조주 하나님을 절대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인간과 동급이 아니라 절대 권위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해석에 있어 우리 인간의 생각을 성경과 동급으로 놓고 성경에 관여시키려는 입장은 적절하지 못하다(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41).

 

또한 비신화화 해석자나 심리치료사의 입장도 그러하다. 포이트레스 박사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때로는 그 때문에 놀라기도 하고 또 우리 마음이 바뀌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41).

 

해체주의자들은 회의와 절망에 빠질 수 있다. 어떻게 하나님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가? 어떤 분이신지 이해할 수 있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1:26-27)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3:9)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배를 요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목표는 단지 성경에 대한 바른 정보를 우리 정신 속에 채우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을 섬기는 일이다(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41).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을 창조하신 분이다. 영혼은 하나님의 은밀한 영감으로 인해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은밀한 작정으로 다스려지고 하나님의 영원한 손에 의해 인도된다(J. Clavin, 기독교강요, I.16.1-2.; J. Calvin, Commentary 2, 144-145). 이런 영혼의 속성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가장 완전하신 형상이라는 사실에 근거해 설명된다. 그러므로 그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고 섬기는 일을 한다.

 

2.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말씀

 

포이트레스 박사는 요한복음 17장의 본문을 가지고 삼위일체 하나님, 하나님이 말씀, 구원의 성취를 다루어 본다. 특히 이 본문 속에 삼위일체 가운데 두 위격이 서로 대화하는 모습이 나타난다고 했다. 이런 면은 우리가 언어와 의사소통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42).

 

성자 하나님은 성육신 이후 신성과 인성은 항상 연합하여 있으며 그 연합은 위격 안에서 그리고 위격을 통해 이루어진다. 위격은 신성과 인성 양성 각각에 속한 속성을 모두 가진다. 이 신성과 인성은 서로 혼합이 없이, 변화 없이, 분할 없이, 분리 없이 연합되어 있다(문병호, 칼빈신학: 근본성경교리 해석, 346)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인성과 신성 양면을 다 나타내고 있다. 17장은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라고 시작한다. 이 부분은 그의 인성을 전제한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렀다는 것은 그가 제자들 앞에 육신적으로 현존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제자들이 보고 만질 수 있는 인간 예수께서 요한복음 17장 전체를 말씀하고 계신다. 이 장은 보통 예수님의 대제사장 기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자신을 십자가 위에 희생제물로 바치기 전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11) 그리고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해(20) 기도하신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신해 자신을 하나님 앞에 보이듯이(7:23-28; 17:1-18; 28:29-30) 예수님도 우리 인간의 대표자와 중보자로 하나님 앞에 서신 것이다.”(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42).

 

뿐만 아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신성을 반영하기도 한다.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17:5)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 그러하다. 여기에 언급된 는 누구이겠는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성육신의 순간에 사람이 되신 것이다. 는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이미 영광을 가지셨던 분이다. 이 구절은 그의 영원한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곧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인성에 근거해서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의 신성에 근거해서도 말씀하시는 분이다. 이 양면이 17장 전체에 거쳐서 강조되고 있다. 그의 영광에 대한 언급이 계속 반복된다. 이 장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24) 여기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셨다라는 언급이 나온다. 다시 한번 창세전부터 존재하셨던 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재확인하고 있다.”(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43).

 

5절과 24절을 자세히 보면 비유적으로 책의 앞표지와 마지막 표지 역할을 한다. 나머지는 모두 이 두 표지 사이에 포함된 것이다. 이것을 볼 때 우리는 이 부분 전체가 말씀 말씀과 어비지 사이의 대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17: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17:25)

 

이 두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계신다. 예수님과 아버지의 관계를 보여준다. 삼위일체는 분명히 하나의 신비이다. 하나님은 셋이면서 동시에 하나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모두 영원한 존재이시다. 각각 구별되며 또 서로 말씀을 나누신다. 그들은 서로 안에 거하시고 따라서 하나이시다.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며 아들 또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오직 하나이시다(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43).

 

성령은 또 다른 보혜사로서 아버지와 아들과 구별된다. 그러나 성령의 내주사역 속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또한 함께 거하신다(14:23).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함께 한 하나님이시며 3위격의 하나님이시다. 그 성령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속을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유효하게 적용하신다. 또한 성령은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키시고 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시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 전인을 새롭게 하신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하여 살 수 있게 하신다(Selected Shorter Writings of B. B. Warfield, I:408).

 

요한복음 17장 속에는 성령에 대한 언급이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성경 다른 곳에는 성령과 하나님의 영광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둔다(Meredith M. Kline, “The Holy Spirit as Covenant Witness,”; 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43) .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4)

 

이것은 구약의 장막 위에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임했던 것을 연상하며 읽어야 할 말씀이다. 로마서 6:48:11은 영광과 성령을 유사한 방식으로 연결시킨다. 이같이 영광은 성경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성령의 현현 또는 성령 역사의 결과가 영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복음 17장에서도 영광이라는 말 속에 성령에 대한 간접적 암시가 포함되어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43-44).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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