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번 포이트레스(Vern S. Poythress)의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말씀과 성경해석 (2)

김순정 | 기사입력 2021/09/04 [17:51]

[논문] 번 포이트레스(Vern S. Poythress)의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말씀과 성경해석 (2)

김순정 | 입력 : 2021/09/0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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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포이트레스 교수는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그는 캘리포니아공과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수학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신학석사를, 남아공 스텔렌보스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한국의 유명한 신약학자이며 대구동신교회의 권성수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3. 하나님의 말씀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포이트레스 박사는 요한복음 17장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결부시킨다.

 

요한복음 17장은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말씀을 결부시키고 있다. 성부와 성자 사이에 말씀이 오간다. 성자께서 성부에게 하시는 말씀을 이 본문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성자는 성부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 또는 말씀들에 대해 언급한다(17:8, 14, 17). 성자는 또한 제자들에게 말씀들을 주시며 이것들을 말씀하신다. 제자들에게 주신 이 말씀들은 바로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주신 말씀들이다.”(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44).

 

요한복음 17장의 말씀들을 몇 가지고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말씀, 또는 말씀들이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드리는 말씀이 있다. 17장 전체에 이 말씀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성자는 자신이 아버지의 말씀을 받았음을 밝힌다. 셋째, 아들이 그의 지상 생애 가운데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다. 아들이 말씀하실 때 아버지도 함께 말씀하신다(14:10).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같은 언급 속에는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잇는 기록된 문서로서의 신약성경이 직접 언급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에 대한 암시는 많다. 또한 제자들을 통해서 전파되는 메시지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현존한다. 17:17에 근거해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아버지의 말씀이 아들을 통해 제자들에게 전해진다. 그 말씀이 제자들 속에 있고 이 말씀이 제자들을 거룩하게 한다. 성령도 그들 가운데 신적 교사로 현존하신다. 이처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상호 내주하심을 통해 그 말씀에 있어 깊은 하나 됨을 이루는 것이다(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45).

 

성령의 역할은 요한복음 17장에 명시적 언급이 없다. 그러나 다른 맥락 속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의 참됨을 확인해 주신다(10:35; 5:17-20; 5:45-47). 또한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그의 권위를 위임하신다(20:21-23). 신약성경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 자체가 구약성경과 동일한 신적 기원과 권위를 가진다는 사실을 확인한다(고전 14:37, 15:2-3; 살전 2:13; 벧후 3:16; 1:1; 22:18-20). 요한복음 17장도 역시 신약성경이 영감으로 기록된 것임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성령의 영감 아래서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17:20). 따라서 요한복음의 기록을 통해서 오늘날 독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45-46).

 

성령께서는 성경기자들이 기록한 모든 것에서 그들의 자연적인 기능들에 대해 또한 그것들을 통해 영감이라 불리는 완전한 신적 영향력(감화력)을 주셨다. 성령은 이 영감을 통해 기록자들이 주제의 선택, 사상과 축어적 표현과정에서 그들을 지도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기능들의 자연적 수행에 의해 방해를 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로 그 기록을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산출하였다. 그 기록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로 무오성과 권위성의 속성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A. A. Hodge, 하지조직신학, I:86-87). 그러므로 이 성경은 오늘만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유일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4. 삼위일체 안에서의 소통

 

17:1-27에 보면 삼위 위격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보여준다. 이 기록의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의 신성을 내포한다. 아들이신 하나님이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고 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시는 말씀도 신적 위격에게 주시는 신적 말씀이다(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46-47).

 

17장에서 예수님의 기도는 중보기도, 즉 다른 사람들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다.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도 포함된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17:5) 그러나 이 모두는 중보기도이다.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의 본질적 부분이 중보기도를 통해 나타난다. 자신에 대한 성부의 뜻의 성취에 대한 자신의 관심의 표현이 중보기도 속에 나타난다(J. Murray, 존 머레이 조직신학, I:71-72).

 

17장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들에 반응해 행동하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아들로서 하나님은 먼저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이에 따라 반응하신다. 17:8내게는 그 장 전체에 나타나고 있는 ’, ‘나를’, ‘나의 것등의 표현들과 같이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포함한 인격 전체를 나타낸다. 그래서 17장 전체 속에 나타나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신적 지식이나 아버지의 유일무이한 친밀성 등의 맥락을 무시하고 예수님의 순전히 인간적 의 면만 추출해 내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고 인위적인 일이다. 요한복음 17장이 보여주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신성과 인성을 포함한 그의 인격 전체가 전제되어 있다(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47).

 

포이트레스 박사는 요 178절에 아버지게서 내게 주신 말씀들이라는 표현에서 주신이라는 단어가 집중한다. 이 단어는 18절에 아버지게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라고 할 때 사용된 보내신이라는 단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버지께서 주시고 보내시는일을 하시는 주된 목적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의 메시지가 세상에 전해지고 또한 구원이 세상 가운데 존속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주심과 보내심은 이렇게 구속이라는 특수한 사역을 목표로 한다. 이 구속은 역사상 특별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이 일은 성육신과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가지고 세상 가운데 나타나심이 뒤따라야 하는 일이다(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47).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는 일은 보냄을 받기 전에 그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1:1은 그리스도의 이 존재 양상이 영원한 신존재임을 명시적으로 밝힌다. 따라서 그의 구속 사역은 그의 신성을 결코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신성을 전제로 한다. 같은 방식으로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에게 무엇을 주심도 신적 아들에게 하나님 지식의 전체를 주심을 전제로 한다(11:27)고 볼 수 있다(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47-48).

 

성부와 성자가 성령과 의사소통을 나누시는 것 역시 전적으로 신적인 일이다. 성령의 들으심은 성부와 성자 하나님께 듣는 것을 말한다(16:13). 16:15에서 예수님은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다. 성부와 성자 하나님이 성령께 말씀하신 것이다. 곧 신적 담화인 것이다(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48).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중보기도는 성부와의 대화 즉 신적담화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해석을 접근할 때 이러한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는 본문에 대한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5. 적 무한의 의미

 

성자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는 말 속에는 구속 사역의 전체적 계획이 담겨 있다. 그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심, 다시 오심의 과정 전체가 다 포함된다(17:24-26). 하나님의 구속 계획 속에는 이 모든 것들이 다 포함된다. “아버지와 함께라는 말은 오직 아들만이 알고 있는 아버지와 함께 함의 특별한 경험을 나타낸다(1:1). 이것을 볼 때 성부와 성자 간의 의사소통은 그 안에 무한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의사소통에는 한 신적 위격이 다른 신적 위격에게 전하신 무한한 내용이 담겨 있다(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50).

 

포이트레스 박사는 요 17장의 말씀에서 원리적 요소들 몇 가지를 확인시켜준다(Vern S. Poythress,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학, 53).

 

첫째, 하나님은 요한복음 17장에 나타나는 단어들을 문장들로 그리고 담화로 조합하신다. 하나님은 일상적 맥락 속에서 늘 사용되는 단어들을 통해 무엇인가 새롭고 특별한 것을 말씀하신다. 17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단어들을 기계적으로 또는 되는 대로 쌓아 놓음으로써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 전체 의미는 각 개별 단어들의 뜻을 합산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전체로서 그 자체의 고유한 품격을 가진다.

 

둘째, 담화들이 의미를 갖는 것은 화자와 청자, 그리고 상황이라는 세 조건이 갖추어진 맥락 속에서이다. 17장 말씀이 신적 무한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 이 특별한 말씀이 아들과 아버지가 공유하는 지식의 맥락 속에서 이야기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셋째, 말은 인간적 기원을 가진 인간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성경은 우리가 인간 언어라 말하는 것이 결코 인간만의 언어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언어를 하나님과 공유한다. 하나님은 이 언어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또한 들으신다.

 

결론

 

하나님은 언어를 통해서 인간에게 말씀하신다. 창세기 1:28에서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중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말씀하셨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십계명을 큰소리로 말씀하셨다(20:1-19; 5:22).

 

오늘 우리는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것은 바로 성경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즉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마땅하고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것이 성경해석의 기초가 된다. 이 기초를 무시하고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은 원래 주어진 하나님의 의도가 아닌 사람의 말, 사람의 생각, 사람의 방법을 찾는 도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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