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목사 설교] 성화와 하나님

갈 4:12-20

김순정 | 기사입력 2021/11/13 [18:15]

[김순정목사 설교] 성화와 하나님

갈 4:12-20

김순정 | 입력 : 2021/11/1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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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의 복은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입니까?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살면 복입니까? 부유하게 살면 복입니까? 높은 지위를 얻으면 복입니까? 이것들은 모두 세상의 기준입니다. 성경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최고의 복을 소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십니다.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복을 주십니다(1:28).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대리왕의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세상을 관리하는 일이 복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후에는 이런 복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 복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3:8). 여호와께서 의인에게 이 구원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5:12).

 

1. 바울을 향한 갈라디아교인들의 사랑(12-15)

 

바울은 갈라디아교인들에게 자기와 같이 되기를 구했습니다. 갈라디아교인들이 바울을 해롭게 하지 않았습니다(12). 바울이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갈라디아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13). 갈라디아교인들이 과거의 바울처럼 율법 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바울은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교인들도 자신처럼 율법에서 자유를 누리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약함은 질병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육체의 질병을 앓게 됩니다. 그럼에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갈라디아교인을 시험하는 것이 바울의 육체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울을 업신여기지 않았고 버리지도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했습니다(14). 시험하는 것은 바로 바울의 질병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교인들은 바울을 무시하거나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마치 천사나 그리스도처럼 영접했습니다. 그가 천사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도 우리와 같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사도이기 때문에 그렇게 대접했습니다.

 

다같이 15절을 봅니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15) 갈라디아교인들의 복은 어디 있는가? 바울이 그들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여기 복(호 마카리스모스)은 원문에 정관사가 붙어서 그 복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복입니다. 갈라디아교인들이 기대하던 그 복입니다. 갈라디아교인들은 할 수만 있다면 눈이라도 빼어서 바울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바울을 사랑했습니다.

 

갈라디아교인들은 그토록 바울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그들을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했기 때문입니다(4:19). 즉 바울이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바른 믿음 안에서 자라기를 위해 기도하고 충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교인들은 바울의 이 수고를 다 알고 있었고 그를 사랑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도의 교제이며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를 사랑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무한하고 크기 때문입니다.

 

2. 이단자들의 열심은(16-18)

 

바울은 참된 말을 했습니다. 갈라디아교인들에게 이단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교훈은 복음이 아니라 이단 사상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담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바울이 갈라디아교인들과 원수가 되었는가? 판단해 보라는 말입니다(16). 갈라디아교인들은 이단자들의 말을 듣고 바울을 원수처럼, 이단처럼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이 답답하다고 토로하는 것입니다.

 

이단자들이 갈라디아교인들에 대하여 열심을 내는 것은 좋은 뜻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들을 이간시키려 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아니라 이단자들에 대해 열심을 내게 하려 한 것입니다(17). 다시 말하면 이단자들은 자신들에게 열심을 내게 하고 자신들이 전하는 거짓 복음에 빠지도록 유혹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전해준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이탈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거짓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가짜 복음을 따르도록 사람들을 유혹했고 결국 천국의 문을 가로막았습니다(23:15). 이런 자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이 아니라 자기 배만 섬기는 자들입니다(16:18). 그러면서도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사도로 속였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했습니다(고후 11:13-15).

 

바울은 그들과 달리 자기 배만 위해 달려온 자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러한 자세로 갈라디아교인들에게 나아갔고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18). 그러므로 사도 바울과 이단자들 즉 거짓 선생들은 목적이 달랐고 목표가 달랐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단자들의 목표와 목적은 다른데 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사랑이 많아 보이고 자상해 보이나 실제로는 자기 배만 채우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의 형상(19-20)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합니다(19). 그리스도의 형상(모르포데 크리스토스)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시고 영화로운 상태에 이르셨습니다. 그러한 그리스도의 모습에까지 이르는 것이 바로 성화(Sanctificatio)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성도는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교인들이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아 가도록 해산하는 수고를 했습니다. 갈라디아교인들을 위해 바울이 수고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자기 자랑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목숨을 걸고, 핍박을 감수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교인들을 위해 복음을 전하고 관심을 쏟았습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위해 늘 관심을 가지고 돌보는 것과 같이 애를 썼습니다.

 

다같이 20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그렇게 갈라디아교인들을 사랑하고 아끼던 바울이 언성을 높이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갈라디아교회에 의혹이 있기 때문입니다. 의혹(아포레오)의심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교인들의 상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어 안타까워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정하신 자들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 미리 정하셨습니다(8:29).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살아가게 하십니다(13:14). 우리는 믿음 안에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새 사람을 입은 자들입니다(4:24).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2:5).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광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1:27).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해 주시고 우리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결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고 새 사람이 된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성화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우리의 노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세속과 죄악을 끊어 버리고 오직 믿음 안에서 거룩하고 정결하게 살아가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이런 우리의 한 주간의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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