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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구원
신명기 34장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다. 모세의 죽음으로 끝난 이스라엘의 역사는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와 열왕기상하로 이어지면서 언약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이어진다. 이 역사는 아담 언약 이후 타락한 아담과 그 후손에게 창세기 3:15절을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경륜(救贖史)이 노아 언약, 아브람 언약으로 이어진다.
이 언약은 시내산 언약으로 확대 발전하였다. 시내산 언약의 핵심은 하나님 여호와는 어떠한 분이시며,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내용이다.
언약 갱신, 즉 언약을 재확인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낭송한다(수 24:2-13). 이로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심을 보여준다. 신약성경도 마찬가지이지만,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라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언제나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가에 대한 구원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질문하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간다. 구원에 관해서 묻지 않고는 하나님에 관해서 알 수 없다. 그리고 구원에 관해서 계시하지 않고 자신을 계시한 적이 없다. 따라서 하나님에 관한 신지식은 언제나 구원론적이다.
여호수아 시대, 계시의 점진적 발전
하나님 여호와는 모세를 지도자로 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B.C. 1446년)하여 한 세대를 거쳐 광야에서 방황한 후인 B.C. 1400년경부터, 가나안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의 각 지파별로 땅을 분배해 나가는 B.C. 15세기 가나안 땅에서 언약을 갱신한 내용이다. 이 역사는 이미 창세기에서부터 진행된 구속의 역사였다.
창세기 1:28절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인간의 순종 여부에 따라 그 결과를 허락해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첫 아담과 하와에게 약속한 하나님 여호와의 자비와 은총을 약속으로 주신 말씀이다.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시며, 인간을 비롯한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인이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신다는 사실이 이미 창세기 1:1절에서 보여준 위대한 선언이다. 통치권을 가지신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다(창 1:28). 인간, 즉 아담과 하와는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하나님 여호와의 자비와 은총속에서 순종하며 사는 것이 중요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갈 때에만 인간에게 생명이 유지되었다. 인간은 자연적인 우주의 통치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속에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보유한 인간은 동시에 하나님의 종으로, 피조물의 본질로 살아가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갈 때 샬롬의 평화가 임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안 되는 이유는 인간 피조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행위로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된다.
하나님은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는데 이 언약은 쌍방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경륜에 의한 언약이다. 하나님과 인간이 마주섬의 관계에 의한 쌍방 언약이 아니라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 아담을 어떠한 피조물로 창조하셨는지를 보여준 것이 아담 언약의 핵심이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격적인 사람으로 창조하셔서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만드셨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반역할 때 하나님의 저주의 심판이 임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담은 뱀의 유혹을 받아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신의 속성을 가지려다 하나님 저주의 심판을 받았다. 그 아담의 저주는 모든 인류에게 전가되었다. 아담은 자신의 행위로 영생과 저주의 생사여탈권이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
피조물의 지위를 포기한 아담은 창세기 3장에서 저주의 심판을 받는다. 심판받은 인간의 문화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져갔다. 단절로 인한 소외 현상이 일어났다. 아담의 장자인 가인은 형제들로부터 소외되고 하나님으로부터도 소외되었다. 흙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그 흙으로부터 소외를 당하였다.
창세기 4:16절에는 정착하지 못하고 방랑, 방황한 자가 된다.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도시를 건설하고 그들은 철기 문화를 발전시켰다(창 4:22). 자기를 위한 음악과 예술을 발전시켜 소외를 극복하려고 했다(창 4:21). 이들은 문화는 인간 이성의 극치인 자율성의 문화였고, 향략의 문화였다.
가인의 이런 문화는 법이 없는 문화였고, 사람을 죽이고 착취하는 문화였다. 그러한 문화는 심판과 죽음의 열매가 있을 뿐이다. 그 결과 노아 홍수 사건이 일어났다. 아담의 범죄로 인한 불순종은 하나님과 단절을 가져왔고 하나님과 멀어진 소외되었고 최종적으로 죽음과 심판인 노아 홍수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홍수 사건 이후의 문화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문화였고(창 4:27), 하나님과 동행한 문화였다(창 5:9). 노아는 새로운 조상으로 그 이름대로 ‘위로와 안식’의 문화였다. 이미 가인에 의해 희생당한 아벨 대신 셋 이후에 창세기 3:15절에서 약속한 생명의 계열인 노아에게 아담과 하와에게 창세기 1:27절과 같은 약속을 주셨다(창 9:1). 이러한 약속을 통해 생명의 후손을 통한 하나님의 왕국을 약속해 주셨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바벨 문화권에 속한 갈대아 우르에서 나오게 하셨다. 아브람을 통한 새로운 구원역사가 진행되며, 이를 위해 아담과 하와에게, 노아에게 주셨던 똑같은 약속이 계승되었다(창 12:1). 각 시대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자들이 등장한다. 하나님의 선택은 구속경륜에 기초한다.
아브람은 새로운 아담으로 새로운 인류 역사의 한 중앙에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게 된다. 이제 바벨권 문화속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생명의 왕국인 하나님의 통치를 받은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 하나님은 이 왕국을 새롭게 건설한 것이다. 이제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의 우상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한 왕국을 건설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창세기 15장에서 약속하신 대로 야곱의 자손이 애굽으로 내려갔지만, 그곳에서 많은 재물을 이끌고 번창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약속이 여호수아에서 실현되고 있다. 아브람과 맺은 약속이 성취된 것이다. 그 성취의 과정인 광야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에게 시내산 언약을 통해 ‘너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므로, 너희는 나에게 충성하고 헌신해야 한다’라고 했다. 만약에 이러한 약속을 어기고 하나님 여호와의 주되심과 창조주이심을 거부할 때 심판이 따라올 것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애굽에서 해방받은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며, 그들을 광야생활로 끝나게 하는 기간이 40년이 소요되었다. 여호수아는 광야에서 태어난 자손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이제 여호수아 8장과 24장은 시내산 언약을 경험하지 못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언약을 기억하며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언약 갱신 식’을 거행한다.
여호수아서의 구원경륜
모세가 각 지파에서 한 명씩 선정하여 12명을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한다(민 13:1-2).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가 2명에게 여리고 성을 정탐하게 한다(수 2:1). 모세가 보낸 12명의 정탐꾼 이름은 언급하고 있지만(민 13:4-15),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고 ‘두 사람’이라고만 언급한다.
여호수아가 정탐꾼을 보낸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인가? 여러 관점이 있을 수 있다. 가나안 땅 여리고 성을 함락하기 전에 그들을 시험한다든가, 불안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대한 확신을 위해서, 혹은 순종하는 자와 불순종한 자를 구분하기 위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의미는 인간 중심의 관점이라면, 하나님 중심의 관점과 맥락을 중심으로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순위가 달라야 한다. 여호수아서는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이해하기보다 창세기에서 발아된 계시의 씨앗인 하나님의 구속계시가 어떻게 여호수아를 거쳐 신약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는가를 살피는 것은 성경신학에서 중요한 관점이다. 이러한 성경 전체의 유기적 통일성에 의해 여호수아는 어떠한 하나님의 구속계시를 설명하고 있는가?
정탐꾼의 정탐 목적 중에 중요한 것은 가나안 땅 여리고 성을 멸망시킬 때 그 중에 라합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이다. 여호수아서는 라합이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 두 명을 숨겨준 원인은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라는 믿음이다(수 2:9).
그러면서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이버지의 집을 대신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표를 증표를 내라”라고 한다(수 2:12). 이렇게 하여 라합은 자신의 가족을 살려달라고 한다,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창세기 3:15절의 약속은 49:10절에서 유다에게로 이어진다. 아브람, 이삭, 야곱, 유다, 베레스, 헤스론, 아미나답, 나손, 살몬, 보아스, 오벳, 이새, 다윗으로 이어진다(눅 3:31-34). 마태복음 1:3절이하의 말씀을 보면 유다, 베레스, 헤스론, 람, 아미나답,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을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라고 한다(마 1:3-6). 정탐꾼 두사람 중 한 사람이 라합의 남편인 살몬이라는 성경적 근거는 없다.
이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족보)이다(마 1:1).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라합의 남편은 살몬이고 그 살몬의 아버지는 나손이었다. 살몬의 아들은 보아스였다. 보아스의 사건은 룻기서에 기록된다. 살몬은 유다지파 계열의 인물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창세가 3:15절과 49:10절의 계승자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여호수아서 2장에서 여리성을 함락하면서 사전에 정탐꾼을 보내 이유는 여리고 성에 있는 라합을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라합은 유다지파 가운데 살몬과 결혼할 사람이라는 사실을 족보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약속에 의한 족보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여호와의 구원이 여호수아서 1장에서 약속되었다는 점이다. 이 점이 바로 여호수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경륜이라 할 수 있다.
세겜 언약 갱신 식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수 24:1)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이 언약을 맺는다는 것은 하나님 여호와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주님이 되시고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 여호와의 충성스러운 백성이 된다는 것이 시내산 언약의 핵심이다. 이러한 언약은 광야생활 40년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여호수아 8장과 24장에서 그 언약 관계를 다시 한번 회상시켜 주고 있다.
이러한 언약은 그들에게 하나님 여호와는 어떠한 분이시며, 자신들은 어떠한 존재이며, 사명과 본분이 무엇인가를 일깨워 준다. 이러한 언약을 갱신한 것은 광야에서 출생한 자들에게 애굽에서의 경험과 40년 광야생활을 출발할 때 시내산 언약에 대해 직접적인 경험이 없는 세대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들에게 과거 애굽에서 어떻게 해방되었으며, 진정한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방신인 바알신이 진정한 주가 아니라 하나님 여호와가 진정한 주이심을 상기시켜 주신 것이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거나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고 충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거부할 때는 그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징계의 압박으로 인한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셨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한 결단을 요구한 것이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확인한 언약 갱신이다.
시내산 언약 이후 계속하여 하나님 여호와는 주(主)가 되시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 하나님 여호와에 대하여 주(主)되심을 항상 고백하면서 살도록 했다. 그것을 규정한 조항이 계명, 율례, 규례로 일컬어지는 율법이었다. 개혁신학에서는 율법을 도덕법, 의식법, 국가법 등으로 구분한다.
율법의 기본법이라 할 수 있는 십계명을 잘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 여호와을 잘 섬긴다는 것과 동료인 이웃에게 인애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와 나라를 생명의 나라. 샬롬의 나라라 할 수 있다. 이 나라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할 때 가능하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나라를 구현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이러한 언약을 광야생활 40년 생활을 마치고 여호수아에 의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모압 평지에서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다시 한번 갱신한 의식을 가졌다. 40년 광야생활 후 이전 시대를 알지 못한 모든 백성에게 언약을 다시 헌번 갱신하는 갱신 식이 여호수아서 8장에 기록된다. 이제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 세겜에서 다시 언약 갱신 식을 가졌는데 여호수아 24장에 기록된 세겜에서 언약 갱신 식이다.
언약을 갱신한다는 말은 처음 맺은 언약의 관계를 다시 한번 회상시켜 준다는 의미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가나안에는 헷족속, 아모리 족속, 가나안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족속 여부스 족속 등이 혼재해 있었다. 이러한 다양한 종족이 믿고 있는 이방 종교에 동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가나안 종교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主)되심을 거역하고 바알 신, 아세라 신, 아스다롯 신 등을 믿는 종교이다. 특별히 가나안 사람들에게 바알 신은 풍요의 신, 농사의 신으로 그들의 생명과 풍요가 바알 신에게 있다고 믿었다.
바알 신을 믿는 바알 종교는 가나안 땅에 팽배해 있었다. 이러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자손은 이러한 바알의 종교에 동화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가운데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갱신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여호수아 23:16절에 “만일 너희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하니라.”라고 한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과 언약을 갱신할 때 당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문화 였던 계약의 형태를 활용한다. 활용하되 그 의미는 기존 계약의 형태와 다른 개념으로 확대 발전하여 사용하였다. 성경신학적으로 하나님 특별계시의 수단으로서 언약을 사용한 것이다. 사람들 간의 권리와 의무의 관계를 규정한 계약이나 당시 도시국가의 왕이 그의 백성과 맺은 계약이나 도시국가 사이에 맺어진 계약 동맹 등의 형태를 특별계시 수단으로 활용할 때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새로운 형태의 언약으로 정형화(定型化)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계약의 형태는 첫째, 나는 누구이다. 둘째, 주권자 선언 셋째, 주권자와 백성의 관계 넷째, 지켜야 할 조항, 혹은 법률조항 다섯째, 증인 여섯째, 계약을 지켰을 때와 지키지 아니했을 때의 내용 등으로 언약문 내지 계약의 형식이었다. 이러한 계약의 형식 구조는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의 형태에 반영되고 있었다.
주권자로서 여호와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 주권자인 하나님 여호와는 그의 백성에게 하염없는 은혜와 은총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 대신 이스라엘 백성은 전적인 충성과 헌신, 그리고 충성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명과 샬롬의 평화가 임한다. 그러나 이러한 언약 관계가 파기될 때에 저주의 불행인 심판이 임할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의존할 때에만 생명이 유지된다.
이것이 바로 신명기에 그 유명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갱신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러한 갱신은 여호수아 8:30절 이하에 기록된다. 이러한 언약 갱신을 위해 먼저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다(수 8:30-31). 제사를 통한 죄 용서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구원의 조건으로서가 아닌 구원받은 백성에게 주어진 언약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언약은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언약의 핵심인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요, 너희는 나의 백성이다”라는 원칙이 유지되어야 한다. 하나님 여호와만 의지하고 섬겨야 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할 존재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반복적인 언약 갱신이 필요하게 되었다.
요시아의 개혁 역시 성전에 율법책을 발견하고 그 율법에 의해 자신들이 하나님 여호와께 불순종하고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므로 언약갱신의 결과로 개혁이 이루어졌다(대하 34:8-13). 율법책을 발견했다는 것은 언약 문서인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재조명하므로 요사아 시대의 개혁과 갱신이 이루어진 것이다.
16세기 종교개혁 역시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는 하나님 여호와와 맺은 언약 관계로 돌아가자는 의미이다. 하나님 여호와만이 주님이시며, 그 외 모든 것은 섬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원칙이 무너질 때 이를 종교적 타락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정복 이후로부터 바벨론 포로 시기까지 그 전체를 한마디로 패역과 반역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과 맥락에서 세겜에서 언약 갱신은 매우 중요하다.
여호수아의 세겜에서의 언약 갱신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수 24:16-25).
16.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17.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18.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
19.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20.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
21.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 하는지라
22.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 하더라
23. 여호수아가 이르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 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하니
24.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하는지라
25.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
세겜에서의 언약 갱신의 핵심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의 결단이나 행위의 이야기는 두 번째이고 오직 첫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 여호와는 누구이신가'하는 문제이다. 본고 서론에서 이미 밝혔듯이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을 베푸셨는가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하신 하나님으로 계시 되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자를 모르면 이스라엘 백성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고 헌신해야 하는가? 섬겨야 하는가? 그것은 구원하시는 하나님,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넘을 수 없는 고지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인식론과 실천적 행위의 근거가 있다. 왜 우리에게 신지식이 그토록 중요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과거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상대로 이러한 언약을 갱신한 내용을 확인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실천적 행위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유기적 통일성을 믿어야 하고 실천적 적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통일성을 믿는다면, 신약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호수아가 백성들로 더불어 세운 언약은 여호와를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섬기기로 한 서약이고 다짐한 내용을 신약성경과 오늘날 지금의 위치에서 이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은 오직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삼위 하나님의 신지식 이해 없이 이해하거나 적용할 수 없는 문제이다.
새언약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구약의 언약을 비롯한 모든 말씀의 성취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주님이시다. 이 이야기는 구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하나님의 말씀은 장차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약속이요, 예언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구속경륜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약속이요, 신약은 그 약속에 대한 성취로 계시되었다.
이제 우리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을 회고적으로 바라본다.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곧바로 구약에 뛰어들지 않는다. 이는 유대종교인 유대인의 랍비와 다를 바 없다. 이러한 관점으로 구약을 바라볼 때 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여호와와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은 하나님의 의도를 드러낸 삼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과 해석적 적용은 66권 성경의 유기적 통일성을 믿는 결과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언약의 백성들로서 구원의 조건으로서가 아닌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그 자녀로서 우리가 어떻게 순종하며 충성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 이런 말씀 이해는 여호수아의 언약 갱신과 같은 형태는 지금도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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