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 |
|
자유게시판 리폼드뉴스 후원 동영상게시판 교역자 청빙 교회 및 각종 행사 책 홍보 공지 |
|
![]() |
[토마스, 역사의 기록과 의미 1] 유해석 교수의 토마스 순교론, 신앙과 역사 사이의 논점유해석 교수 “토마스는 분명 순교자… 선교적 의도와 죽음의 맥락 봐야 한다”고 주장
(리폼드뉴스) 회중교회 소속으로 중국에 파송한 토마스 선교사나 중국에 파송한 귀츨라프 선교사는 장로회 소속 선교사가 아닌 한국을 방문하여 성경을 전달했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본 교단총회가 감리교인 아펜젤러 선교사를 순교자로 기념하여 기념관을 건립하여 기념하지 않고 역사의 기록에서 그들을 만나고 교훈을 얻을 뿐이다. 한때 총회는 총신대학교 교정에 토마스 선교사 기념관을 건랍하자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거부됐다.
선교의 의도와 의미가 아닌 역사적 사실이 쟁점이 된 토마스 사건을 추적해 보고자 한다. 토마스 사건에서 그가 성경을 전달하다가 이를 거부한 자들에게서 죽음을 당했는가? 아니면 조선의 국법을 어기고 양민을 학살할 때 토마스가 동승 합승한 제너럴 셔먼호을 전소시킬 때 그가 성경을 전달하였다고 하여 이를 순교로 보아야 하는가라는 쟁점이다. 그가 어떤 신앙과 의도를 가졌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총회 결의도 없이 총신대 선교학 교수인 유해석 교수와 함께 한 자들이 백령도에 토마스 기념을 건립한다며 총회장은 모금을 위해 전국 교회에 공지했다. 이런 현상들은 총회적인 공론화 작업을 진행하지 않고 진행된 사업이다. 토마스 선교사의 진실한 신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순교의 깊은 정의부터 정립해야 한다.
불법행위를 범하다가 문제가 되어 희생될 때 단순히 성경을 전달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그를 순교자로 보아야 하는가? 순수한 마음의 동기로 시작한 행위에 대해 상대방이 불법행위의 범죄로 처형할 경우, 역시 우리는 그를 순교자로 볼 것인가? 이러한 쟁점 이슈들을 유해석 교수로부터 시작하여 이만열 교수, 한규무 교수, 옥성득 교수, 박용규 교수 등의 주장을 연재하려고 한다. 이러한 논쟁을 통해 필자는 6월에 토마스 선교사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우리 교단총회의 고민을 공유하고자 한다.
오늘은 첫 내용으로 유해석 교수의 발표 글을 통해 그의 주장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총신대 선교학 교수인 유해석 교수는 “토마스는 순교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주장한다. 유 교수는 토마스의 죽음을 단순한 충돌 사건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이라는 외형적 틀보다, 그 안에서 토마스가 어떤 목적과 행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토마스가 상선에 동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통상 활동 참여자가 아니라 성경을 보급하고 복음을 전하려는 분명한 선교적 의도를 가진 인물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토마스가 한문 성경을 준비하고 조선인에게 전달하려 했던 사실은 여러 선교사 기록과 성서공회 자료에서도 확인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유 교수는 순교 개념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정의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순교를 “신앙 때문에 법적으로 처형된 경우”로만 제한할 경우, 초기 선교 역사에서 나타난 다양한 희생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한다.
“복음을 전하려는 의도와 그 행위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는가?” “토마스는 선교사였을 뿐 아니라, 선교 중 죽은 순교자다.”
이 기준에 따르면, 토마스의 죽음은 단순한 충돌 속 희생이 아니라 선교 행위 중에 발생한 신앙적 죽음, 곧 순교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성경을 나누어 주며 죽었다”라는 전승에 대해서도 유 교수는 이를 전면 부정하기보다, 초기 선교 현장에서 형성된 신앙적 기억으로서 일정 부분 신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이러한 전승이 완전한 역사적 재현이 아닐 수는 있으나, 토마스의 실제 선교 행위를 반영한 신앙적 기록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유 교수의 입장은 결과적으로 토마스를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한국교회 선교의 출발점에 선 신앙적 증인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박용규 교수의 입장과 유사하게 신앙적 의미와 선교적 결과를 중시하는 흐름에 속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역사적 분석의 차원에서는 몇 가지 한계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순교 개념을 “선교적 의도 속에서의 죽음”으로 확장할 경우, 그 경계가 지나치게 넓어질 위험이 있다.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같이 정치적·군사적 긴장이 복합된 상황에서 발생한 죽음까지 모두 순교로 포함하게 된다면, 순교라는 용어가 지니는 신학적 엄밀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순교와 일반적 희생 사이의 구분이 흐려질 때, 개념 자체의 의미도 함께 희석될 가능성이 있다. 아펜젤러 선교사가 배를 타고 목포 성경번역자회의에 참석하러 가다 풍랑을 맞아 죽었다. 이도 순교자라고 해야 하는가?
또한 유 교수의 논지는 토마스의 선교적 의도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으나, 역사 해석에서 의도는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요소라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토마스가 선교적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되더라도, 그의 죽음이 실제로 신앙 때문에 직접적으로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충돌 상황 속에서 비롯된 결과인지를 구분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의도만으로 죽음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설명의 간명함과는 별개로 역사적 엄밀성을 확보하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
더 나아가 “성경을 나누어 주며 죽었다”는 전승을 일정 부분 신뢰 가능한 신앙적 기록으로 수용하는 태도 역시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 해당 서술은 제한된 자료에 의존하고 있으며, 독립적 사료로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지속되어 왔다. 이러한 전승을 역사적 사실과 동일한 수준에서 다루게 될 경우, 신앙적 기억과 역사적 사실 사이의 경계가 흐려질 위험이 있다.
이 점에서 유해석 교수의 입장은 이만열 교수가 강조하는 개념적 엄밀성이나, 옥성득 교수가 제시한 역사적 맥락 중심의 접근과 대비된다. 유 교수의 논지는 신앙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의 기준으로 삼는 반면, 다른 학자들은 사료와 개념의 엄격한 검증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방법론적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결국 유해석 교수의 토마스 순교론은 신앙적 해석으로서는 충분한 의미를 지니지만, 역사적 판단 기준으로 적용하기에는 일정한 한계를 가진다고 평가할 수 있다. 토마스를 선교적 증인으로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는 존중될 수 있으나, 그것이 곧바로 순교라는 역사적 규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보다 엄밀한 사료 검증과 개념적 정리가 필요하다.
이 논쟁은 한 인물의 평가를 넘어, 한국교회가 신앙과 역사를 어떻게 구분하고 또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신앙적 의미를 존중하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균형 잡힌 접근이야말로, 앞으로의 교회사 연구와 교회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1966년 이후 토마스 순교기념을 전혀 지키지 않는 이유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계속>
<저작권자 ⓒ 리폼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기사 내용에 특정된 개인이나 관련 교회가 반론을 요구할 때 재반론을 조건으로 허락할 수 있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기사목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