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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도 운동의 교회론은 성경과 개혁신학의 교회론과는 거리가 멀다. 와그너(Wagner)는 신사도 운동의 교회론이 외향적으로 바라본다고 했다. 외향적이라는 말은 교회의 주된 사역을 포함하는 존재의 목적이 외재적이라는 의미이다. 그는 잃어버린 자 즉 불신자들을 그리스도에게로 구령하려는 불타는 소원이라고 한다. 그는 정통교회들이 내재적 사역인 예배와 말씀 선포, 교회 내에서의 봉사에 초점을 맞추고 외재적 사역인 전도에 결단하지 않거나 무관심하다고 비판한다.
또 와그너는 2001년부터 제2사도의 시대의 시작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도들은 항상 모든 시대에 존재해왔다고 했다. 그는 사도의 직제에 대해 설명한다.
“사도는 지정된 사역의 영역 내에서 교회의 기초적 구조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권위와 더불어 은사와 가르침과 위임과 파송을 받은 기독교 지도자이다. 사도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음으로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질서를 세워나감으로 이 일을 성취할 수 있다.”(임창무, “신사도운동에 대한 비판적 연구,” 39)
(1) 교회의 어원적 의미
교회는 단지 일단의 모임이 아니다. 친목회가 아니다. 교회(敎會)는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가르치는 모임’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가르치는 모임이다. 그런데 이 교회의 성경적 의미는 다르다. 히브리어는 카할(קָהָל)은 ‘모임, 회중, 집회’라는 뜻이다(Waltke & Harris & Archer, Theological Wordbook of the Old Testament(TWOT), 1991).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모임, 하나님의 회중,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의 집회라는 의미이다.
또 하나는 에다(עֵדָה)라는 단어로 이것은 ‘모임, 집회, 회중, 떼, 무리’라는 의미이다(Waltke & Harris & Archer, Theological Wordbook of the Old Testament(TWOT), 878). 성경은 이것을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회중, 언약 백성의 무리로 설명한다.
이것을 헬라어에서는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로 표기한다. 이것은 ‘집회, 회중, 교회’라는 의미이다(Kittel & Friedrich,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TDNT), v.3.501). 즉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성도(의 모임)를 말하는 것이다.
(2) 교회의 본질
교회의 본질은 사도가 아니다. 신사도 역시 본질이 아니다. 은사나 예언이나 방언도 본질이 아니다. 신비적 능력이나 이적도 교회의 본질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에 쉽게 넘어간다. 눈에 보이는 현상, 기적을 따른다.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며 교회의 본질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본질로 착각한다. 그리고 이런 착각을 하도록 신비주의자들, 신사도 운동가들, 은사주의자들이 꼬드기는 것이다. 교회의 본질은 고전 1:1-3절에 구체적으로 나온다.
고전 1:1-3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것은 바울과 소스데네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의 서론 부분이다. 여기에 보면 교회의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①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다.
원문은 ‘그 하나님의 그 교회’(τῇ ἐκκλησίᾳ τοῦ θεοῦ)라고 되어 있다(Novum Testamentum Graece, 28 Edition, 1Cor 1:2). 즉 ‘하나님의 소유된 그 교회’라는 말이다. 교회는 친목 단체가 아니다. 교회는 아는 사람들의 친교 모임이 아니다. 교회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며 동아리가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인 교회이다.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택하심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교회는 언제나 사람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 그래서 생각하고 목표하고 계획하는 바가 하나님 중심, 하나님 영광이어야 한다. 이에서 벗어나면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인간의 모임에 불과하다. 인간 중심으로 가면 십자가 종탑이 있고 예배가 있고 성경책을 들고 드나드는 사람들이 있어도 인간의 모임이지 하나님의 교회는 아니다.
②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해진 자들이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해진 자들(ἡγιασμένοις 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이다. 원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진 자들’이라고 되어 있다(Novum Testamentum Graece, 28 Edition, 1Cor 1:2). 교회는 그리스도를 빼고는 말할 수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를 제외하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그리스도를 빼고 다른 것을 넣을 수 없다. 그리스도를 빼고 하나님만 넣게 되면 유대교가 된다.
그리스도를 빼고 성령만 넣게 되면 신비주의, 은사주의가 된다. 그리스도를 빼고 은사만 넣으면 은사주의가 된다. 신사도 운동은 이것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받고 거룩해진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의 문제를 해결받는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빼고 성령의 역사, 그리스도를 빼고 은사, 그리스도를 빼고 예언을 말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다.
③교회는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교회는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원문에 ‘성도라 초대된 자들, 성도라 부름 받은 자들’(κλητοῖς ἁγίοις)이라고 되어 있다(Novum Testamentum Graece, 28 Edition, 1Cor 1:2). 하나님 앞에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 성도가 될 수 없고, 거룩하게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하신 것이다(엡 1장, 롬 9장).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이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성도는 우리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그들만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게 된다. 그래서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편에서는 하나님의 전적 은혜이다.
④교회는 각처에서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다.
교회는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장소적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고린도교회만 유일한 것이 아니다. 사데교회, 에베소교회, 빌립보교회, 로마교회 등등 각처에 있는 교회가 다 하나님의 교회이다. 그러나 이 교회들이 교회가 되는 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어야 한다.
이름을 부른다(πᾶσιν τοῖς ἐπικαλουμένοις τὸ ὄνομα)는 원문에 ‘그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라고 되어 있다(Novum Testamentum Graece, 28 Edition, 1Cor 1:2). 그런데 ‘부른다’는 단어가 현재분사로 ‘계속해서 부르는 중에 있는’이라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다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이 참된 교회이다.
(3) 교회의 사명
교회의 사명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김순정, “칼빈(John Calvin)의 교회 표지에 대한 고찰,” 참고). 첫째는 하나님 말씀의 참된 전파이다. 교회는 말씀을 전파하는 사명이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람의 말이나 세상의 철학이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성경을 그대로 전해야 한다. 교회 내에서는 예배 시간에 설교를 통해 전한다. 심방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정에 전해준다.
또 전도나 선교를 통해 교회 밖에서도 말씀을 전한다. 말씀이 영혼을 변화시켜 다시 살게 한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따라서 말씀이 바르게 전하지 않고 은사, 기적을 통해서는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게 전파하는 사명이 교회에 있다. 말씀을 왜곡되게 전해서는 안된다.
둘째는 성례의 정당한 집행이다.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이 명하신 대로 합법적 사역자들에 의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에 따라 합당한 대상자에게 시행되어야 한다. 세례와 성찬은 자기 마음대로 집행해도 안 되고, 제멋대로 해도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한 대로 해야 한다. 또 성례는 합법적인 사역자들에 의해서 집행되어야 한다. 아무나 할 수 없다. 합법적이지 않은 이들이 집행하지 못한다. 또 대상자가 아닌 자들에게 집행하면 안된다.
셋째는 권징의 신실한 시행이다. 교회는 교리를 순수하게 유지하고 성례의 거룩성을 보전하기 위해 정당한 권징을 신중하게 시행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신사도 운동은 성례, 권징에 대해 관심이 없다. 말씀에도 관심이 없다. 오직 찬양과 기도에만 집중하고 은사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말씀이 약화 되고 말씀이 없는 찬양, 기도, 은사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 능력이 없다. 말씀이 참되지 않는데 은사만 나타나고 기적만 나타난다면 이것은 사탄의 역사일 뿐이다.
①교회는 외향적인 사명만 있는가?
신사도 운동은 교회의 외향적 사명만 강조한다. 내재적 사명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의 전통적 예배, 말씀 중심의 예배를 거부하고 무시한다. 선교와 전도만 신경을 쓰고 그것에만 목숨을 건다. 그것만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다.
교회의 사명은 예배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다. 그리고 교회 밖의 영혼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도이고 선교이다. 먼저 교회 안에서 충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고 전하고 양육해야 한다. 이것이 바탕이 된 후에 전도와 선교를 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의 설교에 무관심하면서 전도와 선교에만 집중하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선교단체이다. 신사도 운동은 교회의 본질을 착각했다. 그래서 교회 내에서의 예배, 말씀 전파, 설교보다 전도와 선교를 중시하게 된 것이다.
②전통교회는 내향적인 사명만 행하였는가?
신사도 운동은 전통교회를 비판할 때 전통교회는 내향적 사명만 행했기 때문에 성장이 멈추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것만 보아도 이 비판은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준 미국의 장로교 선교부만 보아도 그들은 정규 신학을 공부한 목사들이었고 그들이 자신들의 교회와 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우리나라에 와서 복음을 전해주었다.
미국의 교회가 복음과 말씀으로 무장되고 든든하게 서 있었기 때문에 해외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미국의 교회들이 다 흩어져서 선교만 힘썼다면 선교는 실패했을 것이고 우리나라에는 복음이 전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교회의 본질적 사명은 교회 내에서 교회를 중심으로 말씀을 전파하고 성례를 집행하고 권징을 시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든든히 서갈 때 선교와 전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계속) <저작권자 ⓒ 리폼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기사 내용에 특정된 개인이나 관련 교회가 반론을 요구할 때 재반론을 조건으로 허락할 수 있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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