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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박사는 총신대, 합동신학원, 서울대 대학원, 미국 칼빈신학대학원(Th.M.)을 졸업하고,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싱클레어 퍼거슨 교수 지도하에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미국 필라델피아연합교회 담임목사등으로 활동했다. 이 글은 그의 저서 「개혁신학의 정수」에 실린 글로 요약 소개한다. 현대 우리는 한국과 세계 신학계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용어들의 개념과 특성들을 정확하게 가늠해 봄으로 개혁신학의 흐름을 일별하고 혼란스러운 신학 사상들을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출 필요가 있다. 칼빈주의라는 용어는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시대에 루터파에서 스위스 진영의 개신교회를 비판적으로 칭할 때에 처음 사용했다. 벤자민 워필드 박사는 성경에 입각한 가장 순수한 기독교를 칼빈주의라고 하였고, 제한된 의미에서 개혁신학을 동의어로 간주했다. 칼빈주의라는 말에는 요한 칼빈이라는 개인의 이름이 들어 있으나 칼빈이 이 용어를 의도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칼빈주의란 16세기 종교개혁 시대에 스위스에서 태동하여 성경에 뿌리를 두고 크리소스톰이나 어거스틴과 같은 초대교회 교부들의 가르침에 의존하며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비롯한 수많은 신학 저술과 성경주석에 기초하여 발전된 신학 체게와 교회의 신앙고백을 의미한다. 칼빈(1509-1564)은 16세기 유럽의 한복판에서 성경의 확신에 근거하여 새로운 교회, 윤리, 문화, 교육을 제시하다가 생애를 마쳤다. 유럽의 역사에서 어느 신학자도 그와 같이 큰 영향력을 남긴 사람이 없다. 칼빈의 영향력은 지금도 칼빈주의자들의 사상에 미치고 있으며 칼빈주의를 구성하는 큰 기초가 되고 있다. 성경에 입각한 가장 순수한 기독교 신앙을 세우려고 노력한 칼빈주의의 본질과 핵심은 신앙고백서에 응축되어 있다.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배우려면 신앙고백서를 연구해야 한다. 칼빈주의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 신학자들과 문서들을 이해하는 것이 바른 신앙의 내용이며 기본이고 기초이다. 초기 칼빈주의 지도자들은 칼빈, 파렐, 베자, 불링거, 버미글리, 낙스, 우르시누스, 올레비아누스, 잔키우스등이며, 이들이 중심이 되어 작성한 당대의 주요 신앙고백서와 교리서에 칼빈주의 사상의 핵심이 요약되어 있다. 칼빈주의자들이 고백하는 핵심 조항은 제네바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요리문답, 갈리칸 신앙고백서, 제2헬베틱 신앙고백서, 벨직 신앙고백서,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돌트 신경,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등에 담겨 있다. 초기 칼빈주의는 스위스 취리히와 제네바, 독일 남부와 홀란드,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 성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17세기 유럽 대육의 정통주의 신학자들과 영국, 스코틀랜드, 뉴잉글랜드 청교도가 더 다양하고 정교하게 체계화 시켰다. 그 후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신학과 교회뿐만 아니라 정치, 과학, 교육, 문화 등 많은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칼빈의 신학과 주석은 당시 종교 개혁자들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지역과 영국 청교도에게 헤아릴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칼빈은 설교와 교육, 저술을 통해서 개혁신학의 기초적 공감대를 형성하였고 영어로 번역된 저작물들과 제네바에서 출판된 제네바 성경의 난외 해설들을 통해 널리 보급되었다. 지금까지 통설에 의하면 영국 청교도에 끼친 칼빈의 공헌은 유럽 여러 개혁자들 중 한 사람으로 생각될 정도이고, 도리어 스위스에서는 북부 독일어권의 종교개혁자 루터를 비롯해서 불링거, 무스쿨루스, 버미글리등의 영향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페테그리 교수가 이에 대한 더 정확한 자료를 제시했다. 16세기 옥스퍼드 대학교에 있던 종교개혁자들의 도서 목록 중 영어로 번역된 도서 중 칼빈의 저술들이 가장 많았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 칼빈의 영향력은 당시 다른 종교 개혁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번역되고 또 읽혔다. 페테그리 박사는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교의 교회사 교수로 “칼빈은 영향력 면에서나 인기도 면에서나 엘리자베스 여왕 통치 시대 영국교회의 신학 형성에 가장 중요한 신학자로 인식되고 있었다. 칼빈은 최고의 신학자였다”라고 하였다. 루터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지역에 한정된 반면 칼빈은 범세계적인 기독교의 설계자로서 자신을 보편적 복음의 대변자로 헌신하여 유럽 전대륙에 그 영향력을 미쳤다. 이제 한국교회에는 과연 칼빈주의가 제대로 꽃을 피우고 있는가 하는 질문 앞에서 오늘날 한국 칼빈주의자들은 어떤 성취를 이 사회와 국가와 교회에 남기고 있는가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평양신학교 교수진들과 박형룡 박사의 조직신학과 박윤선 박사의 신구약주석을 통해서 세워진 체계는 한국 칼빈주의 신학의 튼튼한 초석이 되었다. 초기에는 한국 신학자들을 통해 칼빈주의의 진수가 잘 소개되고 정립되었다. 길선주, 주기철, 손양원 목사 등 초기 장로교회의 지도자들은 모두 경건을 몸으로 실천한 칼빈주의자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개혁신학의 이해 빈곤으로 근본주의, 세대주의, 경건주의, 보수주의 등이 뒤섞여 있다. 교회 분열과 개교회주의는 권징이 없는 교회론을 남용하고 있으며, 현대의 문제들을 끌어안고 시의적절하게 대응하는 현실성이 부족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경건의 신앙을 오순절파나 순복음 교단의 승리주의적 심리학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의 칼빈주의는 살아 있는 칼빈, 낙스, 에드워즈 같은 인물들이 계속 배출되어야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신약 시대의 베드로, 바울, 디모데처럼 살아가는 현대적 칼빈주의자들이 곳곳에서 나와야만 한다. 우리는 오늘의 칼빈주의자로서 부패한 자신과 싸우면서 교회와 국가와 사회에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데 필요한 것들을 주장해야 한다. 지금은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칼빈주의가 부활해야 할 때이다. <저작권자 ⓒ 리폼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기사 내용에 특정된 개인이나 관련 교회가 반론을 요구할 때 재반론을 조건으로 허락할 수 있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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